채팅형 소설 앱 ‘채티’의 화면. 카카오톡 대화창처럼 보인다.

(선도별)

"거기 회색 후드티 선배."

"여기로 오세요."

(일진우)

"?"

"나 말하는 거?"

(선도별)

"반 번호 이름 말해주세요."

(일진우)

"거의 대부분 나 알 텐데?"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한 번씩 두드릴 때마다 말풍선이 한 줄씩 생긴다. '선도별'과 '일진우'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훔쳐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채팅형 소설 '일진의 첫사랑은 철벽 연하 선도부'를 읽는 중이다. SNS 메신저처럼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채팅형 소설'이다. 인터넷 소설, 웹소설이 최근 채팅 방식의 소설로 진화해 1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엔 문단도 없고, 상황이나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도 찾아보기 어렵다. 90% 이상이 대사와 이모티콘으로만 이뤄졌다. 10대는 책 말고 채팅을 읽는다.

더 쉽게, 더 가볍게… 스낵처럼 즐기는 책

채팅형 소설은 2015년쯤 미국에서 등장했다. 얀(Yarn), 훅트(Hooked) 같은 앱이 나와 인기를 끌었으며, 국내에선 2018년 5월 '채티'가 나왔다. 출시 1년 만에 70만명 이상이 앱을 다운로드했고, 3일 현재 누적 다운로드는 220만을 넘었다. 밀리의 서재도 지난해부터 채팅형 소설 '챗북'을 선보였다. 챗북은 월정액을 내는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포함된다. 둘 다 탭(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동작)을 할 때마다 말풍선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으로 화면의 모습은 카카오톡의 대화창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채티는 기성 작가와 독자가 창작하는 작품 위주이고, 챗북은 기존 베스트셀러나 화제작을 채팅형 소설로 각색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알바생 자르기'나 하완 작가의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을 채팅형 소설로 볼 수 있다. 온라인 팬클럽이나 블로그에서 연재하던 팬픽(fanfic·팬이 스타 연예인 등을 주인공으로 만든 이야기)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채티에 따르면 앱 이용자의 70%가 10대이고, 이용자의 1일 평균 사용시간은 92분이다. 10대가 많은 이유는 우선 가독성 때문. 어릴 때부터 액정 화면으로 글을 읽는 게 익숙하고, SNS와 메신저에 익숙한 덕에 이런 형태의 이야기가 읽기 편하다. 채팅형 소설에는 동영상, 이미지, 효과음, 음악, 지문, 배경화면, 그리고 이모티콘 등이 종합적으로 동원된다. 게다가 탭을 하면서 읽어내려가는 방식은 상대방의 카톡 대답을 기다릴 때와 비슷한 긴장감을 형성해 몰입감이 강하다.

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은 안주현(37)씨는 "제대로 된 독서 지도를 하기 어렵다. 유튜브로 책의 요약본을 보고 독후감을 쓰는 아이가 꽤 있을 정도로 종이책을 어려워하고 귀찮아한다. 그렇다고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고학년만 돼도 웹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지난해부터 채팅형 소설을 읽는 학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볍고 쉽다는 게 채팅형 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채티의 최재현 대표는 "채티가 막 나왔을 때 '웹소설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채티를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웹소설을 보면 답답하고 무겁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현재까지 나온 스토리 전달 매체 중에서는 가장 가볍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채팅형 소설에서 초등학생도 작가로 등단

한연경(43)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이 최근 소설을 쓰겠다고 하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는 "기껏해야 친구들끼리 돌려보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채팅형 소설을 써서 앱(채티)에 올리겠다는 얘길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이런 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이게 애한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앱에서 어른한테 안 좋은 소리라도 들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한씨가 상담을 요청한 교사는 "어차피 이걸 읽는 것도 또래 친구일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쓰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쉽고 가벼운 채팅형 소설의 특성상, 읽는 것만큼이나 쓰기도 쉽다. 작가로서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특히 10대는 또래가 좋아할 만한 로맨스나 드라마 장르를 성인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층을 확보하기 좋다. 채티엔 기성작가의 작품이 710편, 일반 이용자의 작품이 27만편이 올라와 있다. 일반 이용자의 20%가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오는 8월 출간을 앞둔 '일진의 첫사랑은 철벽 연하 선도부'는 채티에서 인기를 끌어 웹툰 제작도 들어갔다. 채티 측에선 작가가 대학생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교 2학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