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연세대 교수·'골목길 자본론' 저자

강남은 IT, 대기업, 콘텐츠 산업이 집적된 국가 차원의 중심상업지구(Central Business District)다. 서울을 뉴욕과 비교하면, 강남은 서울의 맨해튼이다. 뉴욕 맨해튼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곳에 모인 글로벌 산업이 아니라 그 산업을 유인한 도시 문화다. 강남도 맨해튼과 같이 강남다운 도시 문화로 승부해야 한다.

강남은 가장 로컬 마인드 절실한 곳

강남 정체성 발굴에서 중요한 콘셉트가 로컬이다. 로컬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강남이 정작 로컬 마인드가 가장 절실한 곳이다. 여기서 로컬은 바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앞두고 강조한 바로 그 로컬이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아카데미상을 로컬 영화상이라고 평했다. 흥미롭게도 할리우드는 자칫 폄하로 들릴 수 있는 이 발언에 분노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영화 산업의 유일한 중심지가 아닌 여러 중심지 중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는 봉 감독의 조언에 공감한 것이다. 할리우드의 과제는 봉 감독이 지적한 문화 다양성의 수용에 그치지 않는다. 중심지 자부심 때문에 소홀할 수 있는 정체성의 강화도 포함된다. 로컬 관점에서 보면 할리우드가 생산하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할리우드 방식의,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할리우드 경쟁력의 본질은 로컬, 즉 그 지역에 집적된 크리에이터와 기업이 만드는 문화다. 현재 강남의 위치는 할리우드와 비슷하다. 오랫동안 독점적 지위를 지켜왔지만 정체성 강화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남이 다른 지역으로 수출한 도시 문화는 신도시와 거리였다. 강남의 영향력을 대변하듯, 전국의 많은 도시가 '소강남'이라 회자되는 부유층 신도시,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로 불리는 거리를 자랑한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20~30대가 여행 가듯 찾는 골목상권이 등장하면서 강남의 독주 체제는 약화됐다. 가로수길, 홍대, 이태원, 삼청동 등 1세대 골목상권 중 가로수길만이 강남에 있고, 나머지는 강북이다. 그 후 골목상권은 강북 중심으로 확산돼, 필자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총 53개에 이르는 서울의 골목상권 중 44개가 강북에, 5개가 강남에 위치한다.

강북의 골목 문화가 뜬다

골목상권의 수만 문제가 아니다. 강남에 새로운 골목상권이 진입하지 않는다. 가로수길·도산공원·압구정동·청담동으로 이어진 강남권 골목상권의 구성은 2010년대 초반 그대로 정체됐다. 압구정동, 청담동 등 기존 상권도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 반면 홍대에서 시작된 강북의 '힙 타운' 문화는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거쳐 지금은 성수동, 을지로로 확산됐다. 사람이 강북 골목길로 모이자 언론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왜 강북의 골목길에서 놀까'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강북의 골목 문화는 이제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지역 도시들이 새롭게 활성화된 상업지역을 그 지역의 경리단길을 의미하는 '~리단길'로 부른다. 1980~2000년대 강남의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을 선망한 지역 도시들이 이제 강북의 경리단길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강남도 예외가 아니다. 강남 골목에서 자란 청년들이 선릉역, 도산공원, 양재천에서 강북의 골목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강남에서 시작했고 강남 경험을 통해 강북으로 진출하는 공유 오피스 기업 패스트파이브, 아우어베이커리와 도산분식 등 강남 브랜드를 연속 출시하는 씨앤피컴퍼니(CNP Company), 잠실 기반 F&B 기업 일도씨 패밀리, 선릉역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알트탭스페이스 등 강남 지역성을 표방하는 로컬 브랜드가 탄생했다.

골목 문화를 강남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기업도 있다. 최인아책방, 소전서림, 믿음문고 등 강남에 독립서점을 창업한 기업은 개인 공간, 클래식 연주회, 힐링 등 강남 스타일로 개조된 모델로 강남에 진입한다. 포틀랜드의 지속 가능성 브랜드 나우를 인수한 블랙야크는 도산공원에서 강남 골목길과 포틀랜드의 도시 문화를 접목한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한다.

강남 골목상권 활성화 걸림돌은 '가격'

명품 문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개발하는 기업들 또한 강남 로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빈의 클래식 음악을 현지와 자체 스튜디오에서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풍월당, 명품 클래식 안경을 연구해 자체 안경 브랜드를 출시한 프레임몬타나, 해외 명품 백의 위탁 생산을 거쳐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고 도산공원에서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는 시몬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남에서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강남에선 싼 지역이라고 해도 청년 창업가에겐 여전히 임차료가 비싼 지역이다. 하나의 희망은 임차료 문제에 대한 강남 기업의 혁신이다. 부동산 스타트업들은 공유 주택, 공유 오피스 등 공유 경제에서 돌파구를 찾고, 부동산 개발사 네오밸류는 신사동에서 도시형 골목상가인 ‘가로골목’을 개발해 스몰 브랜드를 유치한다. 강남 도시 문화의 매력은 이처럼 새로운 강남 로컬의 개발에 달렸다. 다양한 도시 문화를 중시하는 탈산업화 사회에서 해외에서 수입한 명품 문화로는 부족하다. 외부 문화에 개방하고, 기존 문화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강남 로컬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