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미·중 무역 갈등,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유혈 시위 확산 등 갖은 악재에도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서고 외출금지령을 내리는 주(州)가 늘고 있는데도 증시가 고공 행진하는 기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2일(현지 시각) 미국의 3대 지수인 S&P500 (+0.82%)과 다우(1.05%), 나스닥(+0.59%)은 모두 상승 마감했다. 미국 증시는 코로나 사태 이후 바닥이었던 지난 3월 23일 이후 꾸준히 올라 어느덧 40% 가까이 상승했다. 최근 악재가 될 만한 뉴스가 쏟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 증시의 강세가 의외의 현상이라는 평가도 많이 나온다. 미 증시가 꺾이지 않고 순항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2020년은 'Again 1968'이 될까

미국 역사에서 팬데믹과 유혈 시위가 동시 발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미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1968년을 예로 들며 뉴스와 시장의 흐름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분석했다. 미국의 1968년은 정치적·인종적·보건적 위기가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올해와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당시 발생한 홍콩 독감(H3N2)은 전 세계적으로 번지며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미국에서만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 올해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망자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48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홍콩 독감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중이었는데 1968년 1월 말 북베트남이 '테트 대공세(설날 대공세)'를 시작하면서 전세가 크게 기울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자 미국 내에서는 거친 반전(反戰)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이해 4월에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하며 미 전역에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폭동이 발생했다. 현재 진행 중인 플로이드 사태 이전에 미국 전역에 동시다발적 야간통금령이 내려진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또 1968년은 2020년과 마찬가지로 미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이기도 했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이 당선되며 정권이 바뀌었는데,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경선 후보이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6월 암살당하면서 미국은 정치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미국 증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초 693.55였던 S&P500지수는 3월까지 약 9% 하락했지만, 이후 놀라운 회복세를 타면서 저점 대비 24% 랠리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968년 S&P500 지수는 연초보다 7.6% 상승했다.

◇뉴스에 끄떡없는 시장은 냉혈한 AI 덕?

CNBC는 "빌 클린턴 전(前)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된 1999년, 월가 점령 시위가 있었던 2011년에도 증시는 올랐다"며 "투자자들은 올해도 시장이 뉴스 헤드라인을 무시하고 상승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은 항상 당장의 뉴스를 넘어 미래에 주목하기 때문에 시장이 뉴스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시가 각종 악재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인공지능(AI)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시장 거래를 주도하는 AI는 '감정이 없기(dispassionate)' 때문에 사람처럼 각종 불안과 공포에 심리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과 통계, 컴퓨터 알고리즘에 기반한 트레이딩 기법은 해외에선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빠른 추세로 확산되고 있다. 퀸시 크로스비 푸르덴셜파이낸셜 수석 전략가는 "시장은 늘 감정과 배려, 동정이 없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시장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CNBC방송의 간판 앵커인 짐 크레이머는 2일 최근 유혈 시위 확산에도 증시가 오르는 것에 대해 "시장이 사회 정의를 외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결국 시장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단순히 돈을 벌려고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 증시의 상승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했다. 가장 큰 것은 이른바 'V자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뉴욕주마저 경제 재가동에 나설 만큼 회복이 신속하게 이뤄져 내년에는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 실적 또한 낙관적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상장사의 올해 순익은 1분기 -14%(전년 동기 대비), 2분기 -41%, 3분기 -23%, 4분기 -11.4% 등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 1분기에는 13% 증가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2조달러 이상이 투입될 강력한 경기 부양책뿐 아니라 '주식 외엔 투자할 만한 다른 대안이 없다'는 '티나(TINA:There Is No Alternative) 마켓'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도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들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까지의 미국 증시 강세는 제로(0)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 덕분일 뿐 실물경기 침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하반기에 코로나 2차 대유행이 발생할 경우 올 2~3월에 벌어졌던 폭락 장세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