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서 사육하는 밍크. 네달란드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 두 명이 밍크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밝혀졌다.

네덜란드에서 밍크가 사람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애완동물과 가축이 코로나 감염의 새로운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쥐에서 중간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넘어온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물로 옮겨가는 사례가 계속 나타났다. 이 동물들이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를 퍼뜨리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십여 종의 동물을 코로나 감염 위험군으로 보고 추적 중이다. 사람 간 접촉을 막는 것도 버거운데 사람과 동물의 접촉까지 차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는 것은 아닐까.

◇농장의 밍크가 사람에게 코로나 옮겨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6일 “사람이 밍크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를 조사하는 네덜란드 연구진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며 “동물로부터 사람이 전염된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의 아르얀 스테게만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18일 논문 사전 출판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농장 네 곳에서 최소 24마리의 밍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일부는 폐렴 증세를 보이고 죽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밍크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에서 바이러스를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이 감염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밍크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네덜란드 연구진이 아직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은 유전자 분석에서 농장에서 일한 사람이 밍크로부터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음을 확인했다고 1일 전했다. 농장 근로자의 몸에서 나온 바이러스는 유전자가 다른 코로나 감염 환자보다 밍크의 바이러스에 더 가까웠다는 것. 이 사람은 농장에서 밍크를 돌보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사람에서 애완동물로 코로나 전염

코로나가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도 감염된다는 사실은 잇따라 밝혀졌다. 지난 3월 홍콩에서 포메라니안과 독일세폐드 종 반려견 두 마리가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래 여러 곳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동물이 확인됐다. 홍콩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 확인됐으며 미국 뉴욕에서도 코로나 감염 고양이 두 마리가 나왔다. 뉴욕의 동물원에서는 호랑이 네 마리와 사자 세 마리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사람에게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은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대의 말릭 페이리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1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홍콩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반려견 두 마리를 조사했더니 앞서 코로나에 감염된 견주와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같았다”고 밝혔다.

어린 고양이에게 마스크를 씌운 모습. 최근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사람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같은 고양이에게 다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반려동물끼리 코로나가 전파될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일본 도쿄대와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진은 지난달 14일 국제학술지 ‘셀’에 실험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고양이 세 마리에게 주입했더니 같은 공간에 둔 다른 고양이 세 마리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고 밝혔다.

현재까지는 동물이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긴 사례는 단 두 건으로 모두 밍크라고 네이처는 밝혔다. 따라서 현재로는 사람 간 감염이 문제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는 무시해도 될 정도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방역 노력으로 코로나 감염자가 감소하고 있고 봉쇄정책도 완화되는 시점에서 동물이 코로나 감염자를 다시 증가시키는 새로운 ‘수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은 있다.

◇개·고양이·족제비과 동물이 코로나에 취약해

과학자들은 애완동물, 가축, 야생동물에 대한 광범위한 시료 채취 등 잠재적인 위험 요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의 조안 산티니 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어떤 동물에서 퍼질 수 있지만 충분한 자료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대략 12종의 동물이 코로나에 취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 동물원의 사자, 호랑이, 농장에서 사육하는 밍크 등 지금까지 코로나 감염이 확인된 동물들이 포함된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의 위르겐 리흐트 교수는 “코로나 감염 동물과 같은 개과, 고양잇과, 족제비과 동물도 코로나 감염 후보군”이라며 “이를테면 밍크와 같은 과에 속하는 족제비, 오소리, 담비 등은 아직 아무도 검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험실에서는 이미 다른 동물도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험실에서 햄스터와 토끼, 명주원숭이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접종하자 감염되는 것이 확인됐다.

다행히 주요 가축은 아직 안전하다. 지난달 29일 중국 하얼빈 수의학연구소 과학자들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돼지와 오리, 닭은 코로나 바이러스 접종 실험에서 감염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도 “소와 양, 말은 아직 연구하지 못했다”며 가축의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2009년 팬데믹으로 발전한 신종 인플루엔자는 돼지에서 사람에게 옮아간 바이러스가 일으켰다. 과학자들은 동물 사이에 전파되던 바이러스가 서로 유전자를 주고받으면서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는 변이가 생겼다고 추정한다.

◇동물-인간 옮기며 바이러스 독성 강해질 수도

동물들이 잇따라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나중에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옮겨 다니면서 전염성이 더 강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2009년 팬데믹(대유행병)을 유발한 H1N1형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와 전 세계로 퍼졌다. 이후 바이러스는 사람에서 다시 돼지로 감염됐다. 위트레흐트대의 스테게만 교수는 “애초 바이러스가 동물 간에 퍼지다가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사람에게 감염되는 새로운 변이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같은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박쥐에서 비롯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천산갑에서 사람 세포에 감염되는 데 필수적인 유전자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천산갑.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시작됐지만 천산갑에서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표면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을 숙주 세포의 ACE2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시켜 감염된다. 연구진은 천산갑 고유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을 직접 감염시킬 수 없지만, 이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가 사람 세포와 결합하는 데 필요한 수용체 결합부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시작됐지만, 사람에 감염될 결정적인 무기는 천산갑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지켜내야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