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58~72)=바둑은 대표적인 양극(兩極)의 게임이다. 돌 색깔부터 극단이다. 대국이 시작되기 무섭게 실리와 세력으로 칼처럼 갈라진다. 공격과 수비도 겸하는 법 없이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돌의 삶과 죽음, 호수(好手)와 완착, 승패의 명암은 절대 공존하지 않는다. 고수들은 그 과정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해 간다. 기성 우칭위안이 말한 조화(調和)의 개념이다.

백설 분분한 좌변 계곡에 흑 ▲가 게릴라 임무를 띠고 침투했다. 백은 필살의 공격을, 흑은 혼신의 타개를 시도할 것이다. 그 모순(矛盾)의 대립이 좌변에 어떤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당연한 58에 59는 상대 응수를 타진하는 잽 같은 수. 참고 1도가 흑의 주문으로, 백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래다.

64, 66은 어쩔 수 없다. 백으로선 흑의 침투부대가 좌변 대신 좌상귀에 베이스 캠프를 치는 것도 허용하면 안 된다. 67로는 참고 2도처럼 두면 쉽게 살지만 그야말로 생불여사(生不如死) 꼴이다. 67 절단은 절대의 한 수였고 72까지는 외길. 살자는 쪽과 잡자는 쪽의 죽기 살기식 공방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