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조국 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던 작년 9월.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여론조사를 인용해 "조국 장관 후보자 임명 찬성률이 상승했다"며 "후보자 적격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누구도 국민의 판단 능력을 넘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설 최고위원은 최근 정의기억연대 논란과 관련해 국민 70%가 윤미향 민주당 의원 사퇴를 요구한 여론조사에 대해선 "국민이 정확한 팩트(사실)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판단"이라고 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여론'에 대한 시각이 180도 달라진 것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비슷했다. 작년 9월엔 조 전 장관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보니 (임명 찬반이)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바뀌었다"며 "최대한 조 후보자를 잘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 의원에게 불리한 여론조사가 나온 최근엔 "국민들도 시시비비를 보고 판단해주길 바란다"며 "의혹 제기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얼마 전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이용수 할머니가 화났다고 사퇴시킬 수는 없지 않으냐"며 윤 의원 사퇴론에 제동을 걸었다. 우 의원은 현 정부 초기에 "장관 후보자 지지율이 60% 이상이면 임명해도 된다"며 여론조사를 인사 낙마 기준으로 삼자고 했던 자신의 주장을 기억에서 지운 것 같다.

여권(與圈)은 그동안 정권에 유리한 여론조사를 골라 신줏단지 모시듯 떠받들었다. 공수처 설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등 각종 정책과 관련해 여론 수치를 '국민적 판단'이라고 내세우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윤 의원 사퇴 여론은 '무지한 국민의 판단'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정의연의 정당성이 훼손될 경우 현 정권의 '반일(反日) 전선'까지 흔들리는 것을 막아보려는 의도겠지만, 여권의 '말 바꾸기' 행보는 볼썽사납다.

여론에 대한 여권의 이중 잣대는 탈원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탈원전은 이미 공론화가 끝난 상황"이라며 신성불가침의 성역임을 강조했다. 집권 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 471명에게 '원전 정책 방향' 항목을 끼워 넣는 식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원전 축소'가 53%였다는 것이 근거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3년간 한국갤럽, 한국리서치 등 많은 여론조사에서 원전 이용 찬성이 국민 70%에 달하는 데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는 "선전에 좌절을 주는 메시지는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불리한 자료는 무시하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선택해 선동하면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괴벨스 바이러스'가 정치권에 침투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