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탄천 공영 주차장. 축구장 16배 면적 주차장에 전세 버스 486대가 깔렸다. '고려투어' '청룡관광' '마운틴고속관광' 등 이름을 옆면에 새겨 넣은 버스 50여 대는 번호판이 없었다. 뉴월드관광 소속 버스 기사 김천중(68)씨는 "다달이 차량 보험료 30만~50만원을 아끼려고 다들 휴차 신청을 하고 앞 번호판을 떼서 담당 관청에 반납했다"며 "전세 버스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번호판을 반납하면 의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 불경기' 여파가 전세 버스 업계를 강타했다. 꽃피는 5월은 전세 버스 기사 성수기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여행·워크숍이 취소되고 개강·통근까지 미뤄지자 단체 이동 수단이던 전세 버스도 일제히 멈춰 섰다.

차고지에서 만난 기사들은 "원래 5월엔 하루 서너 탕씩 뛰며 열심히 벌어야 비수기를 버티는데 오늘 나온 사람은 대부분 한 탕이라도 뛰려는 기사"라며 "걱정이 크다"고 했다. 한남관광 소속 버스 기사 A(56)씨는 "1년짜리 계약인 삼성물산 통근 차량 딱 한 대 외에는 회사로 일감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며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기사들도 자발적으로 월급 절반을 반납했다"고 말했다. 뉴월드관광 소속 버스 기사 허건(62)씨는 "청평 금식 기도원으로 오가는 버스 한 대 운행해 월 200만원 정도 벌고 있다"고 했다.

28일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전국 전세 버스 4만1000여 대 중 22.6%에 해당하는 9270대가 번호판을 반납한 상태로 세워져 있다. 조합 관계자는 "재택근무와 개학 연기로 통근·통학 버스 운행이 끊겨, 일부 차량을 제외하고 전세 버스 가동률은 10% 미만"이라고 했다.

업체들은 두 갈래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단축 운행'과 '유급 휴직'이다. 연 단위로 계약한 통근 버스 등 고정 일감이 있는 업체들은 기사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서울 광진구의 한아름금오관광 관계자는 "수익을 위해서라기보다 비수기를 버틴다는 심정으로 영업 중"이라고 말했다. 고정 일감이 없는 업체들은 기사들을 '유급 휴직'시킨다. 기사들을 해고하는 대신 '평균 임금 70% 이상의 월급'을 주면서 휴직시키면 정부가 기사 1인당 월 최고 198만원씩 지원금을 준다.

기사가 자기 돈으로 차를 구입해 전세 버스 회사에 등록해두고 일감이 들어오면 회사에 수수료를 내고 일감을 받아 가는 '지입 차주'들은 손해를 감내하고 버스를 중고 시장에 내다 판다. 2억원짜리 전세 버스를 구입한 지입 차주는 매달 버스 할부금 250만~300만원과 보험료, 세금 등 400만원 가까운 유지비를 내야 한다. 김용근 송파구시설관리공단 탄천주차장 관리과장은 "지입 차주는 대부분 한 달 번 돈으로 그달 유지비를 감당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매달 수백만원씩 적자를 본다"며 "매물이 늘어나면서 중고 버스 가격도 급락세"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초 버스 업계 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전세 버스'에 해당하는 내용은 많지 않다. '블랙박스(영상 기록 장치) 의무 설치'를 유예해주고, 출고된 지 10년 가까이 돼 폐차 대상인 버스를 1년 더 운행하게 해주는 정도다. 이병철 전세버스조합 회장은 "폐차 유예를 받는 버스는 3.5%에 불과하다"며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전세 버스는 시·도에 등록하고 영업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에는 전세 버스 업계를 위해 따로 배정한 예산도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시 전세버스조합은 전세 버스 차고지인 탄천주차장 측에 주차 요금 감면을 촉구했다. 전세 버스 1대당 차고지 한 달 주차 요금은 대형이 12만원, 중형은 10만원이다. 탄천주차장을 관리하는 송파구 시설관리공단 시설안전팀 관계자는 "조합 측 감면 요청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수는 "시내버스나 지하철 같은 정기 교통수단도 수송 대수가 줄어든 마당에 부정기 교통수단인 전세 버스 업계의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로 지역 간 이동이 거의 없어 해결책마저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