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는 러시아가 내전 상태인 아프리카 리비아에 자국의 전투기 부대를 배치했다고 26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미그-29와 수호이-35 등 최소 14대에 달하는 전력이다. 이 전투기들이 러시아에서 출격해 '중간 기점지'인 중동 시리아에서 국적을 숨기기 위해 위장(僞裝) 페인트칠을 한 후 리비아로 투입됐다고 미군은 밝혔다.

러시아 전투기 부대의 목적은 리비아 내전에 개입 중인 자국 용병 단체 '바그너(Wagner) 그룹'을 공중에서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군은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시리아·수단·모잠비크 등 전 세계 분쟁 지역 곳곳에 출몰한 바그너 그룹이 리비아 내전에도 개입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공식 확인한 것이다. 바그너 그룹이 조명받는 이유는 이들이 용병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제 친위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 드미트리 우트킨이 2014년 창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규모는 5000~1만명 수준이고, 주로 전직 러시아 군인들로 이뤄져 있다. 회사 이름은 우트킨이 군 복무 시 쓰던 가명 '바그너'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트킨은 평소 독일 히틀러의 '제3제국'(1933~1945년 독일 나치 정권)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그래서 가명도 히틀러가 좋아하던 19세기 독일 음악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이름에서 땄다고 한다. 조직 자금줄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요식업계 사업가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 그룹은 2014년 2~4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때 최초로 언론에 노출됐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크림반도 내 공항이나 군부대 등 거점 시설을 장악하는 것을 도왔다. 당시 바그너 소속원들이 군부대 마크 없는 녹색 군복을 입고 신원을 드러내지 않자, 현지인들은 이들을 '젤료니예 첼로베치키(녹색 사람들)'라고 불렀다. 이후 바그너 그룹은 전 세계로 전장을 넓혔고, 주로 반(反)서방 세력을 위해 싸웠다. 시리아 내전에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위해, 아프리카 수단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친(親)러 독재 정권을 위해 싸웠다.

외신에 따르면, 바그너 용병들이 받는 봉급은 월 8만루블(약 132만원)에서 25만루블(약 415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국민 평균 월소득(약 71만원)의 최대 6배 수준이다. 지원자는 훈련소에 입소할 때 여권과 핸드폰을 회사 측에 맡겨야 한다. 또 인터넷에 회사와 관련된 정보를 무단으로 올릴 경우, 급여를 받지 못하고 해고당한다.

이들은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면서 정보 보안에 신경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바그너 그룹에 대해 심층 취재하던 러시아 기자 3명이 무장 강도를 당해 숨졌고, 즉각 바그너 개입설로 이어졌다.

러시아 정부는 일관되게 "바그너 그룹은 우리와 관계없는 집단"이라며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12월 바그너 그룹 창설자 우트킨이 크렘린의 공식 만찬에 참석한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 논란이 일었다. 당시 크렘린은 "우트킨은 국가 훈장 보유자 자격으로 초청됐다"며 "우트킨이 (언론에) 어떤 사람으로 알려졌는지, 그가 실제 그러한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바그너와 러시아군의 내전 개입으로 리비아 해법이 한층 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비아에선 2014년부터 정부군과 동부 지역의 반군이 대립하고 있다. UN을 비롯한 서방은 정부군을, 이집트와 몇몇 아랍 국가는 반군을 지지한다. 푸틴 친위대인 바그너와 러시아군의 개입은 반군의 힘을 키우는 한편, 리비아 내전을 미·러 대리전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미군의 전투기 사진 공개에 대해 러시아 측은 "리비아에 군을 파견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