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냄새, 곰팡이 냄새, 화장실 냄새…. 입구 직원에게 표를 주고 안으로 들어가면, 특유의 냄새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매점 유리 진열장엔 봉지 과자가 가득하고, 아이스크림 냉장고엔 성에가 잔뜩 끼었다. 동네마다 하나쯤 있었던 단관 극장, 그 풍경과 감각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착한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연출 구태환)가 마음에 들 것 같다. 게다가 우리 연극계 최고로 꼽히는 배우들이 500석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으로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한다. 좋은 배우들이 좋은 이야기를 만나 연기가 가진 본연의 에너지로 자체발광하는 무대, 만나기 쉽지 않다.

어느 동네나 있었을 법한 추억 속 단관 극장의 이야기 같던 연극은, 철거 전날 밤 극장 사장(박윤희·맨 왼쪽)과 그 아들(박완규·가운데 의자 뒤)이 오래된 아픔을 울부짖듯 털어내며 절정에 오른다.

어느 지방도시,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단관 극장 '레인보우 시네마'. 소피 마르소를 좋아하는 노년의 극장 사장(박윤희)이 맨날 남자에게 속기만 하는 성격도 몸집도 좋은 여직원, 늘 토끼 탈을 쓰고 있는 영사기사와 함께 40년을 지켜온 곳이다. 큰 도시로 나갔던 아들(박완규)이 마지막 정리를 도우러 돌아오고, 아들의 미용실 알바 선배라는 뭔가 수상한 대머리 남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동네 노처녀가 찾아와 북적이기 시작한다. 아들은 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내고, 대머리 남자는 아들에게 투정을 부린다. 영사기사는 왜 토끼 탈을 쓰고 있을까. 노처녀는 왜 얼굴이 늘 상처투성이일까. 각자의 비밀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에 겹겹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모습을 드러내며, 극은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무대 위에 가장 빛나는 건 배우들. 최근에도 '카프카의 성(城)' '맨 끝줄 소년' 등에서 호연했던 국립극단 단골 주역 배우 박윤희는 망해가는 극장의 평범한 사장 아저씨 같더니, 어느새 울부짖는 독백의 힘으로 관객의 가슴을 찢어 놓는다. 극장집 아들 박완규는 그가 출연했던 '만리향'의 중국집 큰아들보다 더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며, '돼지우리'의 러시아 탈영병에 닿을 듯 처절하다. '초원의 빛' '라붐' '엑소시스트' 같은 옛날 영화를 인용하는 대사들이 윤활유를 치듯 짧은 웃음을 터뜨려줘 지루할 틈이 없다.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 오사카 빈민촌에서 곱창집을 하며 사는 재일 한국인들 이야기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2009년 일본 연극계의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쓸었던 정의신 작가가 극본을 썼다. 공연은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