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2015년 정부가 제출한 이듬해 예산안에 대해 "국가 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40%가 깨졌다"며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맹비난했다. 이때 정부가 제출한 지출 증가율은 3%였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집권 후에는 "40% 근거가 뭐냐"고 말을 바꾼 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맹렬하게 빚을 늘려가고 있다. 30조원 규모 3차 추경까지 포함하면 올해 지출은 작년보다 약 18% 늘고 국가 채무는 120조원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나랏빚이 252조원(627조→879조원) 늘어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36%였던 국가 채무 비율은 지난해 38.1%로 올랐고, 올해엔 처음으로 40%를 돌파해 단숨에 46%에 이르게 된다.

채무비율 과도하면 재정·금융위기 불러

국가 채무의 상한선이 어느 정도인지 국제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 가입 조건을 60%로 정했고, IMF는 2010년 보고서에서 선진국은 GDP 대비 60%, 신흥국은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조언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국가 채무 비율 60%, 재정 적자 3% 이내 유지'를 재정 건전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스티븐 체체티 전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는 한 논문에서 국가 채무 비율 85%를 과다 부채의 임계치로 제시했다.

국가 채무에 일원화된 기준이 없는 것은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들은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훌쩍 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일랜드는 국채 비율이 40%대로 낮은데도 2010년 재정 위기를 겪었다.

정해진 상한선은 없지만, 국가 채무가 많을수록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부채가 과다하면 정부의 통상적인 재정 활동에 부담을 주고, 금리 급등, 경기 침체, 인구구조 변화 등 충격이 발생할 때 금융 위기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에 투자한 자금의 회수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은 재정 건전성"이라며 "채무 비율이 50%를 넘으면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할 것이고, 국채 매도부터 시작해 원화가치 하락, 주식 매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한국은 정부 빚인 국가 채무 외에도 가계 부채, 기업 부채, 공기업 부채, 연금 충당 부채 등 숨겨진 빚이 많다는 게 문제다. BIS에 따르면 정부·가계·기업 부문을 합친 한국의 총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4540조원으로 GDP의 237%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총부채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넷째로 빨랐다.

재정 만능주의에 빚만 늘어

문 대통령은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금의 경제 상황을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시' 상황으로 규정하고 확장 재정을 주문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재정 건전성 유지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매년 국무회의에서 향후 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하는데, 현 정부 출범 후 처음 발표한 2017~2021년 계획에서는 임기 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2% 이내, 국가 채무 비율을 40% 초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발표한 '2019~2023년' 계획에서는 재정 적자 관리 목표가 '-3%대 중반 수준'으로, 국가 채무 관리 목표가 '40% 중반 수준'으로 뒷걸음질쳤다. 이렇게 돈을 써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 정부 들어 재정지출은 느는데 성장률은 떨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선심성 재정지출이 많은 데다, 경제 활력을 끌어올리는 정책 없이 '재정만 쏟아부으면 다 된다'는 식의 재정 만능주의가 부른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국가 채무 비율은 순식간에 50%를 넘어 60% 선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 추계에 따르면, 올해 3차 추경과 세수 결손을 반영할 경우 2023년 채무 비율은 54.5%에 이르게 된다. 내년 이후 재정지출이 2019~2023년 재정운용계획에서 정해놓은 만큼 늘고, 경상 성장률이 3%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서다. 지출을 더 늘리고 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지면 채무 비율은 더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