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배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의혹으로 조사받기 위해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이 부회장이 2017년 1월 박영수 특검팀에서 첫 소환 조사를 받은 지 3년 4개월 만이다.

당시 특검팀이 수사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는 이미 기소돼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고, 이와 별개로 3년 넘게 끌어오던 경영권 승계 관련 수사도 이제 종착점에 접어들었다.

◇수사의 쟁점은

이 부회장 관련 수사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다. 2015년 5월 삼성은 두 회사의 합병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전반의 경영권 확보에 핵심 회사였다. 핵심은 '합병 비율'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3%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제일모직 주식 가치가 높을수록 이 부회장에게 유리했다. 합병에서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는 제일모직 주식 0.35주로 계산됐다. 제일모직 주식의 가치를 삼성물산의 3배 가까이 평가한 것이다.

이 합병 비율에 대해 검찰은 삼성이 조직적으로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를 낮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배임)고 보고 있다. 2015년 5월 합병 전 삼성물산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당시 미래전략실 보고서도 확보했다. 삼성물산의 카타르 발전소 공사 수주 같은 호재가 합병 뒤인 7월 말 공개된 것도 그에 따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삼성 측은 "카타르 공사 수주 건은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일부만 수주한 것으로, 이런 경우 언제든 해지당할 우려가 있어 공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의혹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였던 제일모직 가치를 부당하게 높였다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로, 이 회사 가치가 높을수록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1대0.35' 합병 비율은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검찰은 당시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부채를 감춰 가치를 부풀렸다고 보고 있다.

2012년 삼성바이오는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과 공동으로 삼성에피스를 설립했다. 바이오젠에는 삼성에피스 지분의 절반을 정해진 가격에 살 권리(콜옵션)가 부여됐다. 하지만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은 회계장부에서 빠져 있었다. 콜옵션은 부채로 처리된다.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은 "당시 회계 처리는 합병 뒤인 2015년 말 이뤄진 것으로, 합병과는 무관하게 진행된 일"이라며 "제일모직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삼성바이오 가치를 높일 생각이었다면 합병 전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했다.

합병 뒤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바이오가 삼성에피스를 자회사에서 관계사로 변경한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자회사는 부채가 반영되는 장부 가치로 평가되는 반면, 관계사는 시장 가치로 평가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삼성에피스 지분 가치가 30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부풀려져 재무제표에 반영됐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하기 위해선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해 가지는 지배력의 성격에 변동이 있어야 한다는 게 국제 회계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삼성바이오가 삼성에피스라는 자회사를 2014년까지는 단독 지배하고 있다가 2015년부터 미국 회사 바이오젠과 공동 지배하는 것으로 성격이 변경됐다"고 했다.

◇이 부회장 지시·인지 여부가 관건

검찰은 이날 이 부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지시하거나 보고받고 또 묵인했는지를 조사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서 삼성 내에서 이 부회장을 위한 '조직적 승계 작업'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승계 작업의 불법성이나 이 부회장이 그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다루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검찰 조사에서 "(승계 작업과 관련해)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