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78년 전인 1942년 슘페터는 공장이 대장간을 대체하고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대신하듯 지속적인 혁신(Innovation)을 이루려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수의 맏형을 자처해온 작금의 통합당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창조적 파괴다. 보수(保守)는 혁명(Revolution)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개혁(Reformation)하고 혁신해야 산다. 스스로 개혁하고 혁신하지 않은 채 썩은 뿌리로 똬리만 트는 것은 ‘수구(守舊)’일 뿐이다. 2016년 20대 총선, 2017년 5월의 장미 대선, 2018년 6·13 지방선거, 그리고 올해 21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내리 네 번을 연전연패(連戰連敗)하며 지리멸렬한 통합당이 다시 국민 앞에 나서려면 거죽이 아니라 뿌리부터 파고들어 썩은 것을 도려내고 그 밑동에서부터 진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전사들을 찾아내 전면 배치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이에 김종인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통합당을 향해 가칭 ‘프레지덴셜 미스·미스터 트롯’을 펼치길 제안한다. 대통령 후보 노래자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트롯 열풍을 일으킨 미스·미스터 트롯 플랫폼을 벤치마킹해 고갈되고 절멸 상태가 되어 버린 차기 대선 주자군의 발굴과 선정에 지금부터 나서라는 주문이다.

# 애초에 미스·미스터 트롯에 대해 세간에서는 중장년층 수요에 맞춘 KBS 가요무대의 아류(亞流) 정도일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그 뚜껑이 열린 후 미스·미스터 트롯에 열광한 이들은 되레 2040 젊은 세대였고 트롯이 정조준한 신세대 감성은 놀라운 폭발력을 분출하며 연속적인 전 국민적 감성 폭발을 견인해냈다. 땅속에 파묻혀 있던 트롯이 미스·미스터 트롯 플랫폼을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감성의 히말라야 산맥처럼 우뚝 솟은 것이다. '프레지덴셜 미스·미스터 트롯'은 단지 미스·미스터 트롯의 인기에 얹혀 가자는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 출신 배경, 지위 고하 계급장마저 떼고 바닥부터 정상까지 그 누구의 도움이나 조력도 없이 한발 한발 자기 목소리와 자기 실력만으로 내디디며 전문 마스터와 국민 대중에게 공평하게 평가받아 최후 승자를 가리는 방식을 진지하게 차용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대선 후보를 준비하라는 촉구다. 내년 4월이면 차기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는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렇다 하게 내세울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을 만큼 후보 절멸 상태인 것이 차라리 새로운 반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몸부림쳐야 코로나에 움츠리고 긴급재난지원금에 목말라하면서 등 돌려버린 국민과 다시 눈맞춤하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일러스트=이철원

# 총선 참패 후 통합당은 40여 일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했다. 참패 원인조차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채 '코마', 즉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전 부산시장 오거돈의 성추행 사건이 터져도,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 속에 정의가 실종된 정의기억연대의 비리가 쏟아져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어쩌면 이런 '야당 복(福)'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집권 3년 차가 지났음에도 60%를 넘는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선거 부정, 개표 부정 의혹을 둘러싸고 같은 당 의원끼리 서로 당을 떠나라고 힐난하는 민망한 장면마저 연출했다. 공당(公黨)이라면 그런 의혹과 문제 제기가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는 설사 사실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 해도 일단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사실 관계에 입각한 교통정리라도 하는 것이 맞는다. 같은 당 의원끼리 피아(彼我) 구별 못 하고 장외에서 입씨름하게 내버려두는 게 과연 공당으로서 할 일인가? 물론 선거 부정, 개표 부정 의혹에만 집착해 총선 참패의 더 근본적인 내적 요인들을 덮어버린 채 혁신할 기회마저 놓친다면 이보다 더 큰 과오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분명한 좌표와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아울러 홍준표·권성동 등 본의 아니게 당 밖에서 떠돌게 된 정치 자원들도 당장은 아니어도 머잖아 다시 품어내고 받아들이는 도량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통합당은 그 이름에 걸맞게 소아적으로 가지치기를 할 일이 아니라 대승적으로 정치적 총자원을 결집하는 차원에서 더 통 크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홍 전 대표도 말을 아끼고 자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 내리 네 번 진 연전연패의 늪에서 헤어나 정권 탈환의 불씨라도 되살리려면 미스·미스터 트롯의 경쟁 방식을 벤치마킹한 가칭 ‘프레지덴셜 미스·미스터 트롯’을 통해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난장(亂場)을 펼쳐야 한다. 남녀노소, 지역, 유명과 무명을 가리지 말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이 한 몸 던져 보겠다는 모든 자원을 바닥부터 등장시켜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들의 진면목을 드러내 뿌리부터 평가받고 이에 끝까지 살아남는 자를 대선이라는 국민 심판대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없던 방식이겠지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이제껏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네 번씩 연전연패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미래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여실히 생생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래야 국민과 호흡하며 감동을 탑재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가칭 ‘프레지덴셜 미스·미스터 트롯’의 전개를 통해 혁신에 바탕을 둔 창의력의 난장이 펼쳐지고 창조적 파괴가 이뤄져 새로운 미래로의 길이 열리길 진심으로 고대해 마지않는다. 미래는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