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5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 모두 발언 대부분을 국가 재정(財政)의 역할과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재정 투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위기'를 여덟 차례, '과감한 재정'이란 표현도 두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만 했을 뿐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내용은 빠졌다. 문 대통령은 "내년 세입(歲入) 여건도 녹록지 않을 것을 감안하면 뼈를 깎는 지출 구조 조정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의 지출 구조 조정'을 언급했다. 하지만 재정지출 확대로 불가피해진 국채 발행, 증세(增稅) 등 '재정수입'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공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고용·수출 등 실물경제 위축이 본격화하고 있어 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재정이 경제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재정은 당면한 경제 위기의 치료제이면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제 체질과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건전성 악화를 둘러싼 우려를 의식한 듯 "우리 국가 재정은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매우 건전한 편이며, 국가 채무 비율은 3차 추경까지 하더라도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재정 투입 확대에 따라붙는 증세 등에 관한 언급은 피했다. 경제계에선 코로나 사태로 인한 3차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으로 향후 증세 논의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고용보험 적용 대폭 확대 등에 들어갈 재원도 만만치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0일 "코로나 대응과 복지 지출 등으로 재정지출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대통령이 증세 관련 공개 언급은 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 재정과 관련한 최고위급 의사 결정 회의인 국가재정전략회의는 2004년 첫 회의 이후 올해 17번째로 열렸다. 이날 회의엔 청와대 3실장(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은 물론 정세균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등 당·정·청(黨政靑) 수뇌가 모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