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를 한 번도 본 적 없이 전화로만 상태를 듣고 약을 처방하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내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내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는 대면 진료 없이 전문 의약품을 처방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 대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2월 지인의 부탁으로 환자 B씨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으로 상담한 후 비만 치료제 플루틴캡슐 등 전문 의약품을 처방해줬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전화 통화는 직접 진찰이 아니라고 보고 의사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의사가 환자와 대면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화로 충분히 진찰이 이뤄졌다면 직접 진찰한 뒤 처방한 것이라 보고 죄가 없다고 했다. '직접 진찰'은 무자격자가 아닌 의사 자신이 진찰한다는 의미지 꼭 대면 진료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직접 진찰에서)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진찰이 이뤄진 경우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했다면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화 처방은 가능하지만,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1회 이상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대면 진찰이 한 번도 없었다면 환자 상태를 충분히 알 수 없어 '직접 진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건 당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하면서 지난 2월 24일부터 '한 번 이상 대면 진료가 이뤄진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전화 진료와 처방을 허용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한시 허용된 전화 진료와 처방은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없다"고 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일본과 같은 초진 환자 원격진료는 원천적으로 막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서울시내 종합병원 의사는 "일본은 코로나 유행 이후 초진 환자도 원격진료가 가능해졌다"며 "감염병 확산 위험이 있는 초진 환자도 원격진료·처방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 2015년부터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이어 코로나 유행이 본격화하자 지난달부터는 초진 환자도 원격진료를 할 수 있게 했고, 범위도 만성질환과 폐렴·알레르기 등으로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