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여권(與圈)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2015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 사건 관련해 "나는 결백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여권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의 재조사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사건 당사자인 한 전 총리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23일 추도식 후 브리핑에서 "(한 전 총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말이 있었다"고 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한 전 총리가 이날 추도식 후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따로 언론에 입장을 밝히지 않고 추도식장을 떠났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이 재조사에 나서라고 거듭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검찰 수뇌부도 무결점 수사를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의심을 갖고 한번 조사해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의 '조작' 가능성과 '무죄' 주장이 이어지지만, 법조계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은 증거가 명확해 애초 조작이나 무죄 판결은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전 총리는 건설업자 고(故) 한만호씨로부터 2007년 3억원씩 세 차례 총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정치 공작 수사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대법원은 "증거를 종합하면 한 전 총리 혐의는 전부 유죄"라고 했다. 대법관 간에 의견이 엇갈린 부분도 있었지만, 대법관 13명 전원이 9억원 중 3억원에 대해 유죄 판단이 일치했다. 나머지 6억원도 13명 중 8명이 유죄라고 했다.

대법원은 유죄 핵심 증거로 한씨가 발행한 1억원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금에 사용된 점을 들었다. 또 한씨의 경리부장이 검찰 수사에서 "한 전 총리에게 줄 돈을 준비할 때는 매번 사장님(한씨)이 '은팔찌 차고 안 차고는 너 하기 나름'이라고 각별히 주의를 줬다"고 진술한 것도 유죄 증거로 삼았다. 경리부장이 작성한 접대비 내역에는 자금 사용처가 '한의원' '의원' 등으로 적혀 있었다.

여권에서 주장하는 한 전 총리 사건 '조작'의 근거는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한씨의 '비망록'이다. 한씨는 비망록에 '검찰의 강요·회유로 한 전 총리에게 돈 줬다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 비망록은 한 전 총리 재판에서 이미 검찰이 증거로 제출했다. 법원 관계자는 "한씨의 비망록은 이미 재판에서 법적 판단을 받았고 그 결과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이라며 "새로운 사실이 폭로된 게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