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성이 의심되는 어린이 괴질(怪疾·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퍼지면서 환자가 속출하자 정부가 본격적으로 감시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미 질병예방센터(CDC)가 '소아 다계통 염증 증후군(Multisystem Inflammatory Syndrome in Children· MIS-C)'으로 명명한 이 질병은 지난달 말 영국에서 첫 발병 사례가 보고됐으며, 현재까지 미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전 세계 13국에서 환자가 나왔다. 230여명의 환자가 발생한 유럽 내에선 영국·프랑스에서 1명씩, 25개 주(州)에서 220여명의 환자가 발생한 미국에선 최소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아직 발생 및 의심 사례가 없지만, 우리 방역 당국도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선제적인 관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현재 국내 모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어린이 괴질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바로 당국과 연락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치료받는 어린이… 6일만에 퇴원 - 지난 4일(현지 시각) 이른바 '어린이 괴질'로 불리는 소아 다계통 염증증후군 진단을 받고 미국 뉴욕 로체스터 병원에 입원한 9세 소년 보비 딘이 치료를 받고 있다. 보비는 급격한 탈수와 복통 등의 증세를 보여 입원했다. 보비는 입원 후 엿새 뒤인 10일 퇴원했다.

◇방역 당국 "국내 감시 체계 가동"

곽진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관리팀장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소아 다계통 염증 증후군과 관련해 유럽과 미국,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제시·운영하는 감시 방법과 사례 정의, 조사 방식 등을 국내 적용할 수 있도록 전문가 자문을 거치고 있다"면서 "자문이 완료되면 다음 주에는 감시·조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 괴질은 지난달 말 영국 런던의 어린이 8명에게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증성 질환이 나타나면서 알려졌다. 이들은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면서, 신체 곳곳에 동시다발적인 염증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심장 이상까지 나타나는 등 '가와사키병'과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1961년 일본 의사 가와사키 도미사쿠에 의해 발견된 가와사키병은 혀가 부풀고 붉어지는 일명 '딸기혀' 증세를 비롯해 전신에 급성 염증 질환이 나타나며, 심하면 심장 문제를 초래한다.

어린이 환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주로 5세 미만에서 발병하는 가와사키병과 달리 10대 후반뿐 아니라 20대 환자도 발생하고 있다. 22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 노스웰 의학센터에서 25세 성인 환자가 어린이 괴질 진단을 받고 입원 중이며, 뉴욕주립대 랭건병원에서도 20대 초반 환자 여럿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어린 환자들에 비해 10대 후반~20대의 증상이 더 심한 것도 특징이다. 현지 의료진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주로 혈관 내벽에 염증이 생기지만, 청소년과 젊은 성인들은 심장 등 주요 장기에서 다발성 면역 과잉 반응이 나타났다.

◇WHO "코로나와 관련 있다고 가정한다"

이번 어린이 괴질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뒤 환자가 급증했다는 점에서 코로나와의 관련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어린이 괴질 환자가 100여명 발생하며 미국 내에서 가장 심각한 발병 지역으로 꼽히는 뉴욕주의 경우 환자의 60%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지난 13일 기자 회견에서 "(환자들이) 몇 주 전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영국에서 숨진 14세 소년과 15일 프랑스에서 사망한 9세 소년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면역학 임상 교수인 리즈 휘태커 박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정점을 찍고 나서 3~4주 뒤 이 질병의 정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감염 후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WHO도 이 질병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관련성을 경고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지난 몇 주 동안 유럽과 북미에서 어린이들이 가와사키병과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염증성 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다. 초기 보고들은 이 질환이 코로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했다. 다만, 폐질환이나 호흡곤란 등 코로나 바이러스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일부 환자는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아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관련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WHO는 어린이 괴질의 특징으로 0~19세 어린이·청소년이 3일 이상 발열이 나타나며, 피부 발진·결막염·저혈압·쇼크나 설사·구토·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또 혈액 검사 때 염증 수치가 상승하지만 다른 병원균 감염이 없으며, 코로나 증상이 있거나 코로나 환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발생한다는 점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