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도쿄 특파원

지난 5월 10일은 일본의 '어머니의 날'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도쿄 시내 곳곳이 영업을 중지한 가운데에서도 문을 연 동네 마트나 꽃집 등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아버지들은 6월 21일(아버지의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사진〉. 일본은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챙긴다. 하지만 아버지의 날 분위기는 뜨뜻미지근하다.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한 설문조사(전국 2500명)에선 올해 어머니의 날에 선물을 드리겠다는 응답이 71%였으나, 아버지의 날에는 47%에 그쳤다. 아버지의 날 관련 시장 규모는 약 580억엔(약 6650억원)으로 어머니의 날(약 1170억엔)의 절반 수준이라는 조사(2018 일본기념일협회)도 있다.

일본에서 아버지의 날을 본격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들어서다. 1930년대 정착한 어머니의 날에 비해선 한참 늦었다. 이마저도 상업적 전략 차원에서 도입됐다는 주장이 있다. 아버지의 날을 들여온 '일본 파더스데이위원회'란 단체의 모체가 일본 남성패션협회란 이유다. 막대 과자를 먹는 11월 11일, 좋아하는 이성에게 사탕을 주는 3월 14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도입 40년이 다 되도록 아버지의 날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다. '일만 하는 아버지와 자녀 간 거리감' 때문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현재 일본의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완고하고 고집 센 '가부장'이다. 1980년대 전후 경제성장기에 회사에 올인해 돈을 벌어오는 데 주력했다. 육아와 가사는 아내에게 맡겨둔 채 과묵하게 지내는 게 전형적인 아버지상이었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인 1996년 일본 정부 조사에서 아버지들의 6세 미만 자녀 육아 시간은 하루 평균 18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도 경제성장 시기가 끝나고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면서 아버지의 '육아·가사 참여'가 화두로 떠올랐다. 10년 전 일본 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는데, 대표적인 게 '이쿠멘(イクメン) 프로젝트'다. 이쿠멘은 육아(育兒·이쿠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자(Men·멘)를 뜻하는 일본식 조어다. 당시 1.3%(여성 83.7%)에 불과했던 남성 '육아휴직 취득률'을 2020년 13%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남성의 육아휴직 취득률은 고작 6.1%(여성 82%)에 그쳤다.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청년협의회 무라하시 유키 대표는 올 초 언론 기고에서 "직장이나 사회 분위기가 남성 육아 참여에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과거엔 아버지의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은 육아·가사 참여 의지가 있어도 안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려고 하면 눈총을 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겪는 문화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쿠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파타하라(육아하는 아버지 괴롭힘)'라는 말이 함께 유행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현 문부과학성 장관은 2018년 한 강연에서 "3세까지 아기들에게는 엄마가 좋다. 말로는 '남녀평등', '남성도 육아'라고 해도 아이에게는 폐가 되는 이야기"라고 한 적도 있다.

가정보다 회사 우선, 딱딱한 사내 분위기, 주변의 눈총과 걱정.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들어온 표현들이다. 지난해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률은 21%(고용노동부)로 일본보다 낫지만 40%대를 기록하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한국에서 일본처럼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만든다면, 아버지의 날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