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참패로 지도부 와해 상태에 빠졌던 미래통합당이 22일 돌고 돌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택했다. 당을 근본부터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여의도 차르(황제)'로 불리는 김종인 내정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당심(黨心)이 반영된 결과다. 김 내정자는 "인물, 이념, 노선뿐만 아니라 정강·정책까지 싹 바뀌어야 한다"면서 고강도 혁신을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 "먼저 과거와 단절해야"

"맡아주세요" - 김종인(왼쪽) 전 통합당 선대위장이 22일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최근까지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지금의 통합당으로는 대선 후보조차 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선거 4연패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도 당권(黨權) 다툼에 골몰하는 모습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도 했다.

김 내정자는 이런 통합당 내 기풍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보수 진영의 퇴행에서 비롯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 만큼 먼저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당이 어떤 식으로든 사과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집권 기간 내내 친이(親李)·친박(親朴)으로 나뉘어 패권 다툼을 벌이던 풍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버릴 건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날 통합당 당선자들도 기자회견에서 "이제까지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 선언을 하려 한다"며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그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830세대 전면 배치할 듯

정치권에서는 김 내정자가 주요 당직에 청년이나 초선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까지 그는 당 안팎의 '830세대(1980년대생·30대·2000년대 학번)'와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통합당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참신한 얼굴들을 비대위원이나 여의도연구원에 전면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김 내정자는 기자들과 만나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갈 30·40대가 주축이 돼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40대 경제통'이 차기 대선에 나와야 한다는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40대 기수론을 무조건 강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는 당내 일부 대선 주자급 인사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6~10개월 국민 경선 구상

김 내정자는 주변에 "통합당이 대선을 치를 수 있는 모습으로 자락을 까는 데까지가 내 역할"이라고 말해왔다. 통합당도 내년 4월 재·보궐 선거 때까지 비대위를 운영하기로 뜻을 모았다. 2022년 3월 치러지는 대선의 전초전이 될 재·보선 때까지 당 체질 등을 개선해 성과를 내라는 것이다.

김 내정자는 통합당 인사들의 대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6~10개월에 이르는 국민 경선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10~15명에 이르는 대선 주자를 '녹다운' 방식으로 경쟁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총선 이후 김 내정자와 만난 통합당의 중진은 "역동적인 선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떠오르게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중도 외연 확장

'김종인 비대위'는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그가 "상품이 나쁘면 상표도 바꿀 수밖에 없다"며 당명(黨名) 개정을 시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김 내정자는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의 정치 지형이 요동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들이닥칠 '경제 코로나'를 염두에 두고 이념·정책 노선도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김 내정자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기본소득제를 띄울 경우, 당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영남권 당선자들의 반발이다. 당장 김 내정자의 '이명박·박근혜 시대와의 절연'을 두고 대구·경북 지역 당선자들 사이에서 반발 조짐도 있다. 내년 재·보선 외엔 공천권이 없는 김 내정자가 당내 대선 주자들과 대립할 경우 당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