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는 각종 챌린지의 원조 격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위)과 가수 겸 연기자 수지.

회사원 김석원(45·가명)씨는 최근 '북 커버 챌린지' 때문에 고민 중이다. 거래처 담당자로 처음 만나 이제는 주말에도 볼 정도로 친해진 A씨가 자신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북 커버 챌린지란 일주일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하루 한 권씩 책 표지 사진을 올리고 하루 한 명 SNS상의 '친구'에게 동참을 권유하는 캠페인.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전이라 일곱 권이나 올리기가 버거워요. 그렇다고 참여하지 않으면 A씨를 무시하는 건 아닌지 미안하고, 업무상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도 읽지 않는 비문화인'으로 비춰질까 부끄럽기도 하고요. 왜 하필 저를 지목했는지…."

넘쳐나는 '챌린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챌린지는 공익(公益)을 위한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챌린지의 원조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 흔히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에 대한 관심 환기와 기금 마련을 위해 미국 ALS협회가 시작했다. 참가자는 루게릭 환자들이 겪는 근육 수축 통증을 잠시나마 느껴본다는 의미에서 차가운 얼음물이 담긴 양동이를 24시간 내에 뒤집어쓰거나 100달러를 ALS협회에 기부하고, 도전을 이어갈 3명을 지목하는 방식이었다. 유명 인사들이 기꺼이 참여하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사회적 이슈에 동참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트렌드와 SNS 인증 트렌드가 맞아떨어진 것. ALS협회는 1억달러(약 1200억원)가 넘는 기금을 모았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큰 성공을 거두자 다양한 챌린지가 속속 등장했다. 지금까지도 많은 챌린지의 명분은 공익이다. '덕분에 챌린지'는 코로나 극복을 위해 싸우는 의료진에게 수어(手語)로 감사를 전하는 응원 캠페인. 엄지를 치켜든 손을 반듯하게 편 다른 손 위에 올려 찍은 사진을 의료인에게 보내는 격려 메시지와 함께 SNS에 올리면 된다. 세계적 축구 선수들이 유행시킨 '스테이 앳 홈 챌린지'는 손을 비누로 씻고 20초 동안 두루마리 휴지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리프팅(lifting·공을 양발로 차서 공중에 띄우기) 하는 영상을 올려 '손 잘 씻고 집에 머물면서 코로나를 예방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인식 변화나 기부 등 공익이 아닌 재미·놀이를 목표로 쉽게 할 수 있는 가벼운 챌린지가 등장했다. '아무 노래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가수 지코가 지난해 말 내놓은 곡 '아무 노래'의 안무 영상을 15초에서 1분 정도 따라 한 뒤 자신의 SNS에 올린다. 이 챌린지는 처음에는 지코와 동료 연예인들 사이에서 시작됐지만, 짧은 영상을 좋아하는 10~20대 취향을 저격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지코의 '아무 노래'가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근 등장한 '깡 챌린지'는 지난 2017년 가수 비가 발표한 '깡'의 안무를 따라 하거나 패러디한 영상을 올리며 즐기는 챌린지. 가수 비는 깡 챌린지로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MBC '놀면 뭐 하니'에 유재석과 함께 출연하는 등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챌린지의 상업적 가능성을 확인한 기업들은 제품 마케팅을 위한 챌린지를 쏟아내고 있다. 매일유업은 우유 갑에 인쇄된 글자를 조합해 단어나 문장을 만들어 해시태그를 걸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우유 속에 어쩌구 해시태그 챌린지'를 진행했다. 이 챌린지는 6일 동안 1만4000개가 넘는 해시태그를 생성시키는 등 소비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낸 성공적 챌린지 마케팅으로 꼽힌다.

공익을 넘어 재미 심지어 마케팅에까지 활용되면서, 챌린지는 '도전'이라는 원뜻에서 벗어나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대학생 권예지(22·가명)씨는 "아무거나 찍어서 올리고 해시태그만 달면 되는 챌린지가 너무 많다"며 "SNS에서 챌린지를 보는 게 이제 지겹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