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여기 포티 나인(49)이 나왔어요. 포티 나인! 49마일이라면 저도 해 볼 수 있겠어요.”

미국 시청자들은 21일 유희관의 댄스를 별안간 감상했다.

21일 두산과 NC의 KBO리그 경기는 ESPN이 생중계했다. 3회초 두산 투수 유희관이 박민우를 상대로 느린 커브를 던졌다. 전광판에 찍힌 투구 속도는 시속 77km. KBO리그 팬이라면 익숙한 광경이었다. 2013년엔 삼성 진갑용이 유희관이 초 슬로 커브를 던지자 불쾌해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라면 유희관이 이따금 타이밍을 뺏기 위해 ‘아리랑 볼’을 던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미국 중계진에겐 놀라운 광경이었나 보다. 시속 77km는 마일로 환산하면 47.8마일. 일단 이 경기를 중계한 에두아르도 페레스(51)는 이를 ‘포티 나인(49마일)’라 표현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더니 방망이를 쥐고 자신도 칠 수 있겠다는 포즈를 취했다.

페레스는 사실 ‘선출’이라 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그는 1993년부터 2006년까지 14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통산 79홈런 294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타율 0.247로 그리 뛰어난 타자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입담으로 은퇴 후 ESPN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유희관의 느린 공은 지난 15일 KIA전을 통해 이미 미국에 중계됐다. 당시 ESPN 중계진이 유희관이 직구를 던지고 있는데도 “오프스피드 피치를 계속 하고 있다. 직구는 언제 던지는 것이냐”고 해설한 에피소드도 있다. 투구는 느린데 견제구나 1루 송구는 아주 빠르다는 것이 유희관의 또 다른 미스터리다.

유희관의 환한 미소를 거부할 순 없다.

21일엔 유희관의 화려한 춤사위도 전파를 탔다. 4회초가 끝나고 ‘유희관 댄스’가 미국 전역으로 방송된 것. 2017년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만든 광고에 들어간 춤을 3년 뒤 미국 시청자들도 마음의 준비 없이 감상하게 됐다. 경기를 중계한 ESPN 캐스터 존 시암비는 “유희관의 베이스볼 댄스를 보시라. 고(Go)!”라고 말했다.

유희관은 이날 6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호투했다. 팀이 6대12로 역전패하며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느림의 미학’으로 불리는 그는 리그 평균에 한참 모자라는 구속을 보여주지만, 명실상부한 KBO리그 대표 투수다. 2013년부터 7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스탯티즈 기준)이 3.62로 국내 선발 중에선 양현종(7.35), 김광현(6.44)에 이어 세 번째였다.

유희관의 롤 모델은 제이미 모이어(58). 평균 130km의 느린 직구로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5시즌을 뛰며 269승 209패 평균자책점 4.25를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다. 뛰어난 제구력과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두뇌 피칭으로 50세까지 메이저리그 무대에 섰다. 유희관은 “구속에 신경 쓰기보다는 공 끝에 더 집중하고 있다. 8년 연속 10승 달성이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던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