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일 "감염병 확산을 대비해 방역물품 비축 창고를 짓겠다"며 건립 장소로 서초구 서초동 옛 서울소방학교 부지를 언급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 내용을 서초구와는 사전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서초구는 "창고 부지로 쓰기엔 아까운 땅"이라는 입장이다. 박 시장은 비축 창고 건립 계획을 발표하던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비밀주의, 불통주의 때문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심각해졌다"고 비판했다. 전(前) 정부의 불통(不通) 행정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불통 발표를 내놓은 것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20일 본지 통화에서 "박 시장 발표 전까지 서울시가 우리 구에 비축 창고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서초동에 있던 서울소방학교는 지난 2018년 은평구 진관동으로 옮겨갔다. 소방학교가 있던 서초동 부지는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 역에서 600m, 예술의전당에서 800m 거리에 있고, 도로 하나를 건너면 주거지다. 뒤늦게 박 시장의 발표를 전해 들은 조 구청장은 "소방학교 부지는 문화·복지시설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이라며 "이곳에 영구적인 창고를 짓겠다는 계획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영구적 시설로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부지는 서울시 소유다. 그러나 시유지라고 해도 주거지와 인접한 부지에 특수 시설을 건설할 땐 해당 구청이나 인근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 시장은 지난달 28일에도 중구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원래 예정돼 있던 서초구 원지동이 아닌 중구 방산동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국방부와 복지부에 제안하면서 사전에 서초구와 협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불통 논란이 일었다. 시는 지난 2003년 화장장이 포함된 서울추모공원을 원지동에 만들기로 결정한 뒤, 서초구민에 대한 보상안으로 중앙의료원도 원지동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구청에 사전 통지도 없이 계획을 바꾸면서 주민들이 반발한 것이다. 당시 박성중(미래통합당·서초구 을) 국회의원과 서초구도 "서울시의 독단적 발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