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문화부 차장

일터에서 질리도록 뉴스를 접하는지라 집에서는 뉴스를 보지 않는 걸 사회생활 시작한 이래 지난 17년간 '워라밸'을 위한 철칙으로 삼고 있었다. '뉴노멀'이 대세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이 철칙도 무너졌다. 재택근무 중 TV 저녁 뉴스를 보며 국내외 코로나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되었다.

국제 뉴스를 볼 때면 참혹하다. 영상은 시신과 관(棺)을 특히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방문한 적 있는 아름다운 이국(異國) 도시에 짙게 드리운 사신(死神)의 그림자가 낯설고 무참했다.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곳은 회사 연수차 1년간 살았던 뉴욕이다. 미국에서 가장 혹독하게 코로나를 겪고 있는 이 도시에 시신을 부려놓은 트럭이 그득한 장면도 소름 끼쳤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늘 붐비던 맨해튼 곳곳이 텅 비어 있는 광경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가 공허한 유령 도시로 쇠락한 모습에 망연자실해졌다.

사진가 김아타(64)의 '온에어 프로젝트-8시간 연작'은 뉴욕, 베를린, 파리, 베이징 등 전 세계 대도시 중심가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아침 9시부터 여덟 시간을 노출시켜 단 한 컷을 찍은 시리즈다. 렌즈 앞을 스쳐간 사람과 자동차는 희미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사진에는 결국 텅 빈 도시만 남는다. 사진은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빠르게 사라지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느리게 사라진다.' 인류 멸망 직후처럼 적막한 이 풍경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개인전 땐 맨해튼 파크 애비뉴를 찍은 한 점을 빌 게이츠가 8800만원에 사 가기도 했다.

김아타의 2005년 작업 '온에어 프로젝트-8시간 연작' 중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찍은 사진.

화집을 넘기며 적요하기 그지없는 타임스스퀘어 사진을 보다가, 오랜만에 김아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품이 현실이 된 상황을 이 예술가가 어떻게 여길지 궁금해서다. 수화기 너머의 김아타는 "안 그래도 뉴욕타임스가 코로나로 텅 빈 전세계 공공장소를 사진으로 포착한 기획 '더 그레이트 엠프티(The Great Empty)'를 보도하면서 내 작품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뉴욕 갤러리서 작품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2006년 뉴욕 전시 때 기획자는 '8시간 연작'을 내놓겠다는 김아타를 말렸다. 9·11 트라우마가 있는 뉴요커들에게 텅 빈 뉴욕을 보여줘 상처에 소금을 뿌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아타는 설득했다. "사라짐을 사유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언젠가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전시는 대성황을 이뤘다. 뉴요커들은 두 번 울었다. 전시장 안에서 울고, 밖으로 나가 도시의 건재함에 안도하며 한 번 더 울었다. 김아타는 말한다. "내 작품은 '없음[無]'에서 '있음[有]'이 생산 혹은 창조된다는 의미의 역설이다."

텅 빈 도시, 텅 빈 거리, 텅 빈 국고와 기업의 주머니…. 코로나가 빚어낸 이 거대한 '공(空)'의 세계에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미국 확진자가 급증하고, 그중 절반인 1만명이 뉴욕주에 집중된 3월 어느 날,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브리핑에서 들은 말이 자그마한 희망이 된다. "지금은 휴머니티를 연습할 때입니다. 품위, 미소, 참을성을 위한 시간이죠. 9·11 때도 이렇게 했었지요. 네, 우리에겐 문제가 있습니다. 예, 우리는 해결할 겁니다. 이겨낼 거예요. 그러면서 더 나은 자신(better selves)을 발견해 냅시다. 뉴욕이 이를 찾아내고 입증하는 선봉에 서게 합시다. 그것이 뉴욕의 운명이고 유산이자, 제가 뉴요커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