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시작된 코로나 사태 이후 뉴스를 통해 접한 세상은 그야말로 '총동원령'이 내려진 형국이었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인 우리 네 식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대학교 본부는 원격 수업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은행에 다니는 남편은 코로나발 경제 위기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중소기업 고객사 때문에 비상 체제였다.

다섯 살, 세 살인 두 아들 육아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로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원이 어려워지면서 남편과 번갈아 연차휴가를 소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 사람들이 말하는 '장기전'을 대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로 발생한 육아 공백

아이들을 대신 보살펴줄 육아 도우미, 이른바 '이모님'을 찾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 돌보미 구인 플랫폼에서부터 정부 서비스까지 수차례 면접을 봤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전에 2시간, 오후 3시간, 총 5시간을 돌봐줄 이모님을 어렵사리 구한 적도 있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게 서툴렀다. 모처럼 '이분이다' 싶은 육아 도우미를 찾았더니 "벌이가 나은 다른 일을 찾겠다"며 그만두는 일도 벌어졌다. 총체적 난관이었다.

강현지(34)씨는 “코로나로 맞벌이 육아에 어려움이 많지만, 엄마의 꿈을 응원해주는 의젓한 첫째와 재롱둥이 둘째 때문에 힘이 난다”고 했다. 강씨가 지난달 12일 두 아들 손을 잡고 경기도 파주출판단지를 산책하고 있다.

결국 친정엄마가 생업을 중단하고 손주들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친정엄마는 손주들을 꼭 끌어안으면서 "우리 아가들이 이만큼 큰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 아빠, 할머니가 항상 같이 있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하염없이 애들 외할머니한테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육아의 주체는 부모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당국자부터 의료진, 시민까지 한마음으로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듯, 육아 역시 학교와 보육 기관, 가족의 합동 작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육아의 1번 주체는 부모라는 사실을 지난 5개월간의 코로나 육아 분투 과정에서 깨닫게 됐다.

영유아기 아이들 입장에서 주(主) 양육자의 잦은 변경, 특히 부모의 잦은 부재는 아이들의 정서적 발달에 좋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계속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게 되고, 이 고민은 엄마인 내가 더 많이 하게 된다. 어리석은 고민을 풀어준 것은 놀랍게도 아이들이었다.

직장 나가는 엄마 꿈 응원하는 아이들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발레를 하는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축구소녀와 발레리노'라는 책이 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책인데, 이 책을 읽던 큰아이가 나한테 대뜸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는 우리 주원이와 재원이가 바르고 맑게 자라는 거야"라고 대답했더니, "에이 그게 무슨 꿈이야. 엄마도 엄마 꿈이 있을 거 아니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동생과 놀아주는 의젓한 첫째를 보면 아이도 엄마를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아 힘이 난다. 떼도 많이 쓰지 않고 형을 잘 따르는 재롱둥이 둘째도 힘든 생활의 활력소다. 그렇게 우리는 육아가 행복한 고난이라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좀 더 빠르게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시간은 당기려고 노력했다. 어려울 때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되, 상황이 괜찮을 땐 궂은일을 도맡았다. 동료들 역시 같은 고민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선배들이 '회사 스트레스는 퇴근 후 웃으며 반겨주는 아이들을 통해 극복된다'고 말하면 그저 흘려들었는데, 올해는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엄마나 아빠, 아이들 모두 남편이나 아내, 부모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맞벌이 육아를 버티게 하는 큰 힘이라는 사실이다. 행복으로 꽉 찬 순간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 이면에는 지금의 내 고민을 이미 했을 옛날 그때의 엄마가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