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올해는 밀라노에 못 갔다. 매년 4월 열리는 디자인계 최대 행사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6월로 연기되더니 결국 취소됐기 때문이다. 디자인 트렌드를 파악하고 신제품을 살펴보고 디자이너들을 만나기에 이만한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일년 중 가장 중요하게 챙기는 행사였다. 그뿐인가. 상반기에 열리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도 취소됐고, 베네치아 국제 건축 비엔날레는 내년으로 연기됐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전시 개막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디자인 프로젝트 역시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소식 외에는 이슈가 순간적으로 증발한 것도 처음 겪는 일이다. 이는 단순히 행사가 취소됐다는 아쉬움을 넘어 디자이너와 기업이 오랫동안 준비한 신제품을 발표하고 반응을 살필 좋은 기회가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사가 사라진다고 새로운 디자인 프로젝트와 신제품, 아이디어가 공유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세계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 빠졌지만 '버추얼(virtual·가상) 디자인 페스티벌'을 재빠르게 열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선보이고, 온라인에서 전시회를 열어 신작을 소개하고,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속에서 건축물을 지어 올렸다. 그사이 알리바바 그룹과 협력한 2020 F/W 상하이 패션 위크는 최초의 디지털 패션 위크를 선언하며 라이브 스트리밍(실시간 중계) 형식으로 개막했다.

이번 일은 디자인계가 구체적인 디지털 연계와 몰입감 있는 기술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전시회와 다양한 공연이 온라인으로 서비스됐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녹화나 현장 중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부터 디지털을 염두에 두었다면 카메라 세팅이나 공간 연출, 몰입을 위한 사용자 경험 기획 자체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들의 욕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디자인계도 언컨택트(비대면) 뉴노멀 시대를 맞아 빠른 속도로 자세를 고쳐 앉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