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춘향, 두 번째 몽룡. 하지만 두 사람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두근두근하다"고 했다.

국립창극단이 코로나 사태 뒤 국립예술단체 중 첫 공연으로 창극 '춘향'(연출 김명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춘향' 이소연(36)과 '몽룡' 김준수(29)를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창극단원인 두 사람은 공연마다 팬을 몰고 다니는 '창극단 아이돌'. 이번 공연에서도, 합을 맞춰 춤추며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하는 '사랑가', 춘향이 몽룡을 떠나보내는 '이별가' 등에서 놀라운 호흡과 조화를 보여준다.

국립창극단의 새 작품 ‘춘향’에서, 춘향은 당차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1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춘향’ 이소연(왼쪽)이 ‘몽룡’ 김준수의 허리끈을 제 쪽으로 잡아끌며 극 중 두 연인의 ‘밀당(밀고당기기)’을 익살스레 재현해 보이고 있다.

2010년 '춘향전'과 2014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에 이어 세 번째 춘향이 된 이소연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고 했다. "첫 춘향은 대사도 거의 없이 소리에 집중한 전통적 작품이었고, 두 번째 춘향은 피를 한 바가지 뒤집어쓰거나 새장에 넣어져 무대 천장에 매달리기도 했던 파격적 작품이었어요." 이 무대의 춘향은 광한루에서 '만나달라'는 몽룡의 애원을 '초면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하다니 양반 자제면 다냐'며 앙칼지게 내치고, '내 마음을 믿어달라'며 몽룡이 내민 혼인증서를 눈앞에서 찢어 무대에 흩뿌린다. 극의 시점도 고전처럼 몽룡이 아닌 춘향 시점에서 진행된다. 김명곤 연출이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인물"로 춘향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공들인 부분이다.

그만큼 혼자 무대를 장악하고 자기 소리의 힘만으로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장면도 많아졌다. "몽룡을 떠나보내며 '이별가'를 부르고 1막이 끝났는데, 연주해 주시는 선생님 한 분이 '너 오늘만 살고 공연 그만할 거냐'며 걱정해 주셨어요. '내가 혼을 갈아 넣지 않으면 관객이 감동할 수 없겠구나, 오장이 찢기는 마음을 소리로 표현해야겠구나' 생각하며 무대에 서요. 관객이 '소리꾼이 연기하고 나서 소리하는구나'가 아니라, '배우가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걸 소리로 표현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요. 창극이 그래서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죠."

이번 '춘향'은 우리 소리를 담는 그릇인 창극의 본질에 더 집중했다. 홀로 또 같이 무대를 채우는 이소연과 김준수의 절창이 더 강력하게 관객을 빨아들인다. 이소연은 익숙한 여성 소리꾼의 탁성과는 결이 다른 맑은 소리로 마치 멱살 잡아끌듯 관객을 극 속에 끌어들이고, 김준수는 순정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외모에 굵고 힘 있는 소리로 반전 매력을 선보인다.

특히 어사 출두 장면에서 홀로 돌출 무대에 서서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는 김준수는 콘서트장의 록스타 같다. 관객의 환호성이 마스크를 찢고 터지는 듯 극장을 울린다. "관객의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최전방에서 독창하듯 소리를 해야 하니까 정말 긴장해요. 콘서트장에서 열광하는 관객들처럼 이 무대의 관객들을 사로잡고 싶어요."

꽃피는 5월이지만 여전히 모두가 숨죽인 시기. 두 사람은 "과연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마음 졸였지만, 지금은 이 위기를 뚫고 오시는 관객들께 더 큰 박수를 돌려 드리고 싶다"고 했다. "남원에서 춘향제가 열리는 5월, 판소리 다섯 바탕의 꽃인 '춘향'을 보여 드리게 됐어요. 위로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김준수) "춘향이 또 새로운 해석으로 무대에 오르는 건 고전이 가진 힘, 역경을 뚫고 솟아나는 사랑의 힘 때문 아닐까요. 끈질긴 생명력, 밝은 기운 전해 드리는 무대 만들겠습니다."(이소연) 공연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