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뭐야, 바이올린이야?" "아니, 비올라라는데?" "비올라?" "응, 저기 봐. '세계적인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19일 오전, 벌써 넉 달째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1층 로비에 리처드 용재 오닐(42)이 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오닐은 미국 클래식계 최고 권위인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고, 비올리스트 최초로 줄리아드 음악대학원에서 전문 연주자 과정을 밟은 스타 연주자. LA에 머물다 지난 2일 입국한 그는 자가 격리가 끝나자마자 맨 먼저 이곳으로 달려왔다.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40여명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19일 오전 명지병원 로비에서 '코로나19 특별 음악회'를 연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관객들 앞에서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됐다는 설렘에 어젯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공연 시작 10분 전, 오닐은 피아노 반주를 맡은 이소영(53)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장과 함께 칸막이 하나로 겨우 가린 로비 구석에서 막바지 조율을 했다. 객석과의 거리는 '생활 속 거리 두기' 수칙에 따라 2m. 코로나 사태 이후 주말도 반납한 채 환자들을 돌봐온 이 병원 감염내과 의료진 7명이 앞줄에 앉았다. 마스크를 끼고 그들 앞에 선 용재 오닐은 "여러분이 세계의 진정한 영웅"이라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여러분을 위해 작게나마 위안을 전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입원 중인 한다빈(8)양도 한 시간 전부터 공연장에 나와 리허설부터 지켜봤다.

첫 곡은 오닐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프렐류드였다. 넓게 뚫린 공간에 병원의 출입구와 접수·수납 창구 등이 한데 있어서 "○○○ 보호자분" "딩동" "비켜주세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호흡기를 꽂고 침대에 누워 급히 이동하는 환자도 있었다. 평소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음악으로 다독여주겠다"고 말했던 오닐은 이날 30분 남짓 공연하는 내내 눈자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울컥해선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비올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슈베르트의 '보리수' '아베 마리아', 본 윌리엄스의 '그린 슬리브즈' 연주가 끝나자 일일 관객들은 "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며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은 동요 '섬집 아기'. 청진기를 손에 쥔 채 연주를 들었던 명지병원 감염내과 강유민(39) 교수는 "진심을 담은 연주에 나도 모르게 뭉클했다"고 했다.

오닐의 어머니는 6·25전쟁으로 고아가 됐고, 1958년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어머니는 어릴 때 앓은 뇌 손상으로 정신지체 장애를 겪고 있다. 양조부모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를 길렀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시골 세컴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는 손자를 레슨시키려고 할머니는 여든에도 토요일마다 왕복 여섯 시간 운전대를 잡았고, 그 일을 10년간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10년 전 양조부모가 모두 돌아가시면서 "삶에 폭풍이 몰아쳤던" 그는 지난해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리면서 "홀로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공포심에 몸을 떨었다"고 했다. 두 달 전부터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다른 연주자들처럼 그도 연주가 모조리 취소되는 초유의 일을 겪었다. 그는 "'앞으로 1년간 공연이 없으면 어떡하지?' '고지서 비용을 못 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며 "그때마다 바흐의 음악, 특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고 했다. "다양한 감정이 들어 있어 세상과 내가 연결돼 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꼈어요."

진심은 오는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이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코프스키,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코로나 극복 콘서트 '당신을 위한 기도'를 연다. 오닐은 "혹시라도 상황이 나빠져 공연을 취소하게 된다 해도 저는 힘들어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