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님도 놀아나는 후라이 맘보/ 할머니도 바람나는 후라이 맘보'.

전후(戰後) 피폐해진 서울에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후반, 미 8군 쇼 무대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경쾌한 춤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춘향이도 향단이도 꿈을 깨는 맘보'(춘향이 맘보), '아리랑 도라지가 헤이맘보/ 스리랑 할미꽃이 헤이맘보'(맘보타령)처럼 한국적 소재와 결합한 맘보들이 쏟아지며 황폐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 14일 국립한글박물관 전시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를 찾은 관객이 노래 '개똥벌레'를 듣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는 90여년간 대중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노랫말을 조명한다.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였던 '낙화유수'(1929)부터 방탄소년단의 'IDOL'(2018)까지 노랫말 총 190여곡과 함께 대중가요 음반·가사지·축음기 등 전시 자료 222점을 소개한다.

대중가요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가 열려왔지만, 노랫말에 초점을 맞춘 전시는 처음이다. 유성기 음반(SP 음반)과 동봉된 가사지들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자료다. TV조선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이 열창했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작사가가 친필로 직접 쓴 가사지도 있다. 작사가 반야월은 전쟁 피란길에 어린 딸을 잃은 아픔을 안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썼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뜨고 헤매일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꼭꼭 묶인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고개'.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노래방 등 당시 음악을 즐겼던 공간을 재현해 당대 분위기를 살렸다. 일제강점기 때 다방을 재현한 '경성다방'에서는 재즈풍 노래 '청춘계급'(1938)이 흘러나온다. '탭댄쓰' '샴팡(샴페인)' '웟카(보드카)' 등 이국적 문화를 즐기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떠오른다. '춤이나 추잔다 사랑의 탭댄쓰/ 이밤이 다-새도록 춤이나 추잔다/ (…) 샴퍙을 마시며 춤이나 추잔다'. 1970~80년대 음악 다방을 재현한 '르네쌍스'에선 김민기의 '아침 이슬'(1971)부터 남진의 '임과 함께'(1972), 나훈아의 '고향역'(1972) 같은 노래들을 즐길 수 있다.

전시 후반부는 노랫말의 말맛에 집중한다. 원곡은 '뱀(The Snake)'이었으나 한국에 들어오며 친근하게 바뀐 '최진사댁 셋째딸' 등의 번안곡들이나 가곡·발라드·트로트·록으로 만들어진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 시를 이용한 노랫말들을 살펴본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노랫말을 재해석해 포스터를 만들거나 DJ가 '사랑'에 관한 19곡을 믹싱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노랫말들도 새롭게 조명한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생활 속 거리 두기 실천을 위해 1시간당 100명으로 관람 인원을 제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