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꺼, 진주 김승호입니더." "지는 마산 김정대." "거제 김의부입니더. 벨고(별고) 없습니꺼?"

무림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25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지호수 근처 세미나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한글학회와 조선일보가 함께 만드는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경남 지역 대표 8명이 속속 도착했다. 진주 대표 김승호(68), 마산 김정대(68), 울산 조용하(80), 창원 조성덕(85), 거제 김의부(75), 창녕 성기각(61), 통영 김성재(59), 함안 구현옥(55). 각 지역 토박이로 꾸준히 지역말을 연구·수집해온 실력자들이다.

반두깨미(창원), 빤주깨~이(함안), 사깜(통영), 동디깨비(울산)…. 같은 경남인데도 방언이 이렇게 다양하다. 모두 '소꿉놀이'를 뜻하는 말이다.

'말모이 100년' 실무를 맡고 있는 김형주(상명대 교수)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말모이 사전은 온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전인데요, 독자들이 올려주신 단어 중엔 확인되지 않는 생소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김 국장은 "영화 '말모이'를 보면 일제강점기 전국 대표들이 몰래 강당에 모여 각 지역 말들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21세기에 만드는 우리 사전도 그런 철저한 '현장 검증'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경남을 시작으로 강원·경북·제주 등지로 대표 모임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 국장은 준비해온 인쇄물을 나눠주며 "단어와 예문들을 꼼꼼히 읽어보시고, 어색한 설명이나 틀린 표현이 있으면 주저없이 알려달라"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공개(팽이)라는 단어를 봐주세요. 독자가 '공개 치러 가자'는 예문을 올렸는데 이거 어색하죠?" 창녕 대표 성기각씨가 답했다. "우리 동네에선 그렇게 안 씁니더. '공개 치로 가재이' 해야죠." 창원 대표 조성덕씨가 맞받는다. "그런데 왜 칩니꺼? 우리 동네에선 돌린다 캅니다. 요래요래 줄을 감아가지고 '공개 돌리러 가재이' 하는데."

'꼭지'란 단어에선 한참 얘기꽃을 피웠다. '딸 많은 집에서 아들 낳기를 바라며 사용하던 이름'으로 '어렸을 때 꼭지라고도 했고 둘남이라고도 했어'라는 예문이 올라왔다. "왜 둘남이냐면 둘째는 제발 꼭지 달린 거 나와라, 아들 낳자는 뜻이에요.(일동 웃음)" "'이제는 딸을 그만 낳고 싶다'는 뜻으로 둘순이, 둘년이도 있었지. 남존여비 사상이 심했을 때 얘기죠."

1950년대 영·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138명.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많았다. '부뜰이(붙들이)'와 '따쭐이'란 이름은 이런 시대 상황에서 생겨난 말. 김성재씨는 "바닷가 애들 중에 특히 많았다. '닻'을 뜻하는 경남 방언이 '땃'인데 그게 얼마나 길고 튼튼하냐. 배가 정박할 때 닻을 내리듯 이 세상에 닻을 내리고(따쭐이), 목숨을 꼭 붙들라(부뜰이)는 의미"라고 했다. 김 국장은 "바로 이런 설명 때문에 이 자리가 필요했다"며 "'우리가 옛날에 이렇게 살았었지' 하고 미래 세대가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꼭 적어놓겠다"고 답했다.

경남 방언엔 '꺼지기'(거적)란 말이 있다. 한 독자가 '꺼지기 씬 넘 니러온다'(거적 쓴 놈 내려온다)는 예문을 올렸는데, 창녕 고수 성기각씨가 바로 짚어냈다. "이 예문을 쓰려면 어떤 상황에서 썼는지를 적어야 해요. 거적 쓴 놈이 내려온다는 뜻이 아니라, '눈꺼죽이 내려온다' 즉 참기 어려운 졸음이 쏟아진다는 비유적 속담이죠. 우리 어무이 할머니가 맨날 '아이고, 꺼지기 씬 넘 니러온다'고 하셨죠."

이날 김 국장은 대표들에게 임명장을 주며 "사전 작업이 끝날 때까지 함께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정대씨는 "생소한 말이라서 확인이 안 된다고 사전에서 배제하면 그 단어는 영영 사라진다"며 "그런 단어만 별도 부록으로 묶거나 일러두기식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활용해 최대한 담아달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