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보다에서 왔다던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 하루가 달라지는 변화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동공이 커지고 바빠진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혓바닥이 새파랗도록 따 먹는다. 바람을 안고 등지며 산마루를 지키는 삘기를 뽑아 질겅질겅 씹어 단물로 허기를 면하고, 물오른 소나무의 송기로 배고픔을 달랜다.

섬진강 지류인 가마소에서 멱을 감으며 참게 붕어 피라미를 잡느라 더위를 잊는다. 석쇠에 굽거나 어죽을 끓여 먹고 평상에 누워 악성 모차르트의 변주곡인 줄도 모르고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며 촘촘한 밤하늘의 별을 세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모깃불도 사위어 간다.

우리의 소꿉놀이는 돌멩이 모래 조개껍데기 풀잎 들꽃으로 밥상을 차리고 고무신 한 짝을 접어서 다른 짝 안에 넣어 풀뿌리로 끌고 다니면 자가용을 가진 살림이 남부럽지 않다. 삽자루의 토막을 깎아 심에 쇠구슬을 박고 크레용으로 알록달록 색칠하여 닥나무 채를 휘두르면 팽이는 종일 돌아 하루해가 짧다.

서랍에 있던 백환권 지폐 다발을 꺼내 친구들과 마당에서 딱지치기를 하다가 혼이 난다. 돈을 모르던 천진난만한 시절이다. 얼음물로 냉수마찰 훈련을 받으며 심신을 단련하고, 산 너머 서당에서 천자문 공부를 마치고 화투 놀이한 것이 들통나 빨가벗고 꽁꽁 얼어붙은 냇물에 들어가 벌을 서면서 도덕을 깨친다.

나를 꿈꾸게 하던 하동 고전 낭창거리 마을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그중에서도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던 고향의 토속적인 말들을 잊을 수 없다. 하모, 에나, 난주, 덕석, 미영, 중우, 소캐, 에북…. 특히 '참', '진짜'라는 의미를 가진 '에나'라는 말은 가슴에 품고 다니다가 딸의 이름이 되어 지금 호적부에서 빛나고 있다. 소꿉친구들에게 "난 인자 부산 가서 중학교 댕긴데이"라고 작별을 고했더니 여기저기서 "에나가?"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에나'라는 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꿈같던 유년 시절이 박하향처럼 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