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중문판에서 한민족을 뜻하는 'koreans'를 검색하면 '조선족' 위키피디아 문서가 최상단에 뜬다. 이 문서는 세종대왕을 조선족으로 소개한다.

구글 검색창에 중국어로 ‘한민족(韓民族)’을 입력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화면 제일 위에 ‘조선족(朝鮮族)’ 세 글자가 뜬다. 한민족을 뜻하는 영단어 ‘koreans’를 중문판 구글에서 검색해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엄연히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포함된 ‘한민족’이란 단어와 구분된다. 주화융 중국 베이징외대(北京外大) 교수도 이와 관련해 “한민족을 ‘중국 내 조선족’을 뜻하는 말인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구글 중문판에서 중국어로 '한민족'을 검색하자 가장 위에 노출되는 결과는 '조선족'이다.

왜 구글이 한민족을 조선족이라고 하는 것일까?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 중문판에서 ‘한민족’을 ‘조선족’과 같은 말이라고 규정하고, ‘한민족’ 문서의 제목을 ‘조선족’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구글 검색엔진은 위키피디아의 신뢰도를 가장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검색 결과 최상단에 해당 언어 위키피디아 문서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위키 중문판의 문서가 편집되면 구글 검색 결과도 영향을 받는 식이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자유롭게 편집이 가능해 중국 네티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 세종대왕·김연아는 ‘조선족 대표 인물’?

위키피디아 중문판은 세종대왕도 조선족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어로 된 ‘조선족’ 문서를 클릭하면 세종대왕을 비롯해 백범 김구 선생,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피겨 여왕 김연아, 배우 이영애가 얼굴 사진과 함께 ‘조선족 대표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도 나란히 붙어 있다. 이 페이지는 “조선족은 한민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한국과 북한에 총 7600만명, 중국에 200만명이 있다”고 설명한다.

위키피디아 중문판의 '조선족' 문서에서는 세종대왕을 비롯해 백범 김구 선생, 피겨여왕 김연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배우 이영애 등을 '조선족 대표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족'의 인구 분포에 대해서도 "한국에 5000만명, 중국에 230만명이 있다"고 소개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중국의 극성 네티즌들이 한국 비하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민족을 조선족이라 부르는 것은 한민족에 포함된 한국인을 중국 소수민족으로 취급하는 처사라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중국판 위키피디아는 2001년 개설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부 혐한(嫌韓) 성향의 중국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국 비하 내용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중국 내 위키피디아 접속은 지난해 차단됐지만, VPN(인터넷 우회 접속)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여전히 접속 가능하다.

김예일(22) 베이징외대 국제경제학과 유학생은 "2018년부터 중문판 위키의 '조선족' 문서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인해전술을 당해낼 수 없었다"며 "한국인이 바이두(중국 최대 포털)도 아니고 구글에서 조선족이라 불리고 있으니 나라 잃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 중국과 세계의 위키 '편집 전쟁'

중국 네티즌들의 위키피디아 ‘편집 공격’은 한국만 겨냥하지 않는다. 홍콩 시위, 대만 주권, 달라이라마 등 예민한 국제 이슈 문서마다 이들은 자국에 유리한 내용을 집어넣기 위해 문서 수정을 반복해왔다.

2001년부터 개설된 중국판 위키피디아의 첫 페이지. 이곳에서 매일같이 중국 네티즌과 세계 네티즌 간의 '편집 전쟁'이 벌어진다.

지난해에는 중문판 ‘대만’ 문서에 ‘대만은 중국의 주(州)’라는 문장이 올라왔다가 대만인들의 반격으로 삭제됐다. ‘홍콩 시위’ 문서를 두고는 집회 참가자가 ‘시위대’냐 ‘폭도’냐를 두고 중국 본토와 홍콩 네티즌 간에 수백 차례가 넘는 수정 전쟁이 벌어졌다. 티베트 망명 정부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영문판 문서에는 ‘중국인’이라는 설명이 아직도 들어갔다 빠졌다를 반복한다. 영 BBC는 중국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위키피디아 활동을 두고 “중국 정부 주도하에 조직적인 수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하기도 했다.

악의적으로 편집된 위키피디아 문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내용이 구글 검색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전세계인들의 구글 검색량은 평균 1초당 4만건에 달하고, 전 세계 검색량의 90%를 독점한다. 중문판 위키피디아의 경우, 중국어로 검색하는 세계의 중국어 학습자들과 중화권 거주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공신력이 없는 문서인데도, 사실의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도 많다. 김예일 베이징외대생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민족을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잘못 알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