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빈(16·용남고)은 한국 육상계에 오랜만에 뜬 샛별이다. 계룡중 3학년이던 작년 5월 전국소년체전 여중부 1600m 계주 결선에서 충남의 우승을 이끌었다. 400m 마지막 구간을 책임지는 최종 주자로 나선 양예빈은 50m가량 앞서 달리던 대구 선수를 따라잡더니, 10m 이상 앞서며 골인했다. 이 압도적인 스퍼트로 '계룡 여신'으로 불린 양예빈은 두 달 뒤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여중부 400m에서도 1위(55초29)를 하며, 종전 여중부 최고 기록(55초60)을 29년 만에 갈아치웠다.

그러나 양예빈은 올해 고교 진학 후 석 달 가까이 스파이크를 신고 트랙에서 달리지 못했다. 코치가 짜준 계획표대로 계룡시에 있는 집 주변에서 조깅을 하거나, 공원에서 계단 오르내리기를 하고, 집에서 근력 운동을 하는 게 고작이다. 코로나로 학교 교내 훈련 자체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기량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시기 놓쳐

일반적으로 육상 선수들은 겨우내 체력을 다진다. 웨이트트레이닝 중량이나, 달리는 거리를 최대치로 늘린다. 단거리의 경우 2월 하순 무렵부터 일주일에 3~4번 트랙에서 실전처럼 뛰며 테크닉을 가다듬는다. 이 시기 스파이크를 신고 트랙에서 뛰어야 제대로 된 스피드 훈련이 가능하다. 자세도 바로잡을 수 있다. 4월부턴 대회에 출전해 그해 최고 기록을 향해 뛴다.

양예빈의 400m 기록은 작년 18세 이하 세계 1위(51초17)에 아직 4초 이상 뒤진다. 하지만 그는 중2 때였던 2018년 4월부터 15개월 동안 개인 기록을 6초 가까이 앞당겼다. 하지만 한창 성장기에 코로나로 제동이 걸렸다. 이정호 한체대 육상 교수는 "16세 전후 성장기 단거리 선수들은 체계적인 훈련으로 순발력과 근지구력을 극대화해줘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며 "훈련이 부족하면 근력과 심폐지구력, 유연성이 약화돼 기존 기량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6 리우올림픽 여자 400m 금메달리스트인 쇼네이 밀러-위보(26·바하마)는 15세이던 2009년 최고 기록이 55초52로 작년 양예빈의 최고 기록보다 0.23초 느렸다. 하지만 성장기 때 체계적 훈련과 재능이 맞물리면서 1년 후 52초45로 기록을 3초07이나 줄였다. 양예빈은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올해 목표치를 낮췄다"며 "기대하는 분이 많은데 준비를 제대로 못 해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 노리는 '수험생 선수' 불안

트랙뿐 아니라 창·원반·포환던지기 같은 필드 종목 선수들 상황도 심각하다. 수도권의 한 고교 육상 코치는 "던지기 종목 선수들은 안전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며 "답답해하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3 선수들은 더 불안하다. 예년 같으면 4~6월에 이미 여러 대회에 나가 대학 진학에 필요한 성적을 냈을 것이다. 올해는 아직 대회가 하나도 치러지지 않았다. 6월부터 예정된 대회들 역시 연기 혹은 취소 가능성이 있다. 한 지방 고교 육상부 3학년 A 선수는 "매일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한동안 학교 운동장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며 "지금 훈련을 재개한다고 해도 체력을 끌어올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당일 컨디션에 따라 기록에 편차가 생기게 마련인데, 한두 대회 기록만으로 실력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최근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 감염 확산으로 고교 3학년 개학이 지난 13일에서 20일로 연기됐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육상 선수들의 초조함도 일주일치가 더 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