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곳은 춤을 배우는 곳이 아닌 바이올린을 배우는 강의실. 바이올린을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왈츠를 춰본 적이 있느냐고 난데없이 물은 것이다.

이상한 선생님은 바로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단원이었다. 빈 필의 한국 연주 여행 도중, 학생들의 일일 선생님으로 나선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 이 흥미로운 레슨을 참관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차례대로 레슨을 받았고, 역시 한국인 학생들은 기술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전 세계에 소문난 만큼 한국 학생들은 능수능란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왈츠의 리듬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학생들은 악보의 표기대로 왈츠 리듬을 연주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 날아온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의 근본은 그들이 단 한 번도 왈츠를 춰보지 않은 데 있었다. 왈츠엔 순간적으로 박자를 밀고 당기는 찰나의 미학이 담겨 있다. 빈의 왈츠를 단순히 '쿵, 짝, 짝!' 3박자로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떠올랐다는 듯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왈츠를 춰 본 적이 있니?" 학생들은 당황했지만 선생님은 신이 나 춤을 추었다. 오스트리아의 왈츠, 프랑스의 왈츠를 직접 춰가며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그대로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직접 몸으로 느꼈으니 오랫동안 기억될 교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상적인 레슨은 나에게도 각인됐다. 악기를 제자리에서만 배운다는 편견이 사라졌다.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프리드먼이 자주 이야기했던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쇼팽의 마주르카를 연주하려면, 마주르카를 직접 일어나 춰봐야 한다.' 마주르카는 폴란드의 민속 춤곡을 말한다. 폴란드 출신 작곡가 쇼팽이 가장 사랑한 장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지금도 프리드먼의 마주르카를 최고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