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이 밭 자체가 미술 작품이다. "전시 제목이 '씨 뿌려 그리기(Sowing into Painting)'다. 밭이 초록으로 물들고 하늘색 꽃이 피면 '유동하는 회화'가 될 것이다."

설치미술가 김수자(63)씨는 최근 스웨덴 바노스 콘스트에서 개막한 이번 개인전을 위해 전시장 내 100평 규모 야외 텃밭에 아마(亞麻) 씨앗 두 종을 파종했다. "전시 요청을 받고 전시장을 둘러보다 텃밭을 발견했다. 마침 이 지역 주 재배 식물이 아마라고 한다. 아마 줄기는 전통적인 캔버스 원료가 되고, 씨앗에서 짠 기름은 유화 물감에 사용된다. 씨앗이 자라 화면과 매체가 되고, 그림으로 남아 지속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운 생의 주기처럼 느껴졌다." 전시는 11월 1일까지 열리는데, 10월쯤 마을 주민들과 아마를 수확하며 1년 농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움직이는 그림’을 위해 전시장 야외 텃밭을 갈고 씨앗을 뿌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김수자씨는 한국서 원격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김씨는 한국 전통 보따리를 입체 조각처럼 작품화하는 '보따리 작가'로 유명하다. 식물성 천(fabric)의 작가답게, 이번 농사는 그가 40여년간 진행해 온 예술성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미를 지닌다. "지속적으로 회화와 표면의 문제를 질문해왔다. 내게 농사는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땅이라는 하나의 화면 위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이 그림이 된다. 거기에도 미학이 있다. 고랑의 선, 모든 식물의 색깔…." 화면 실험은 전시장 내 숲에 걸어놓은 침대보 100장('laundry field')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생로병사를 치르는 침대보(캔버스)를 자연에 놔둠으로써 화면의 겉과 깊이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다.

이 같은 자연성은 군인이었던 아버지 따라 휴전선 근처 시골마을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도 작용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환경적인 삶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이 주는 자유와 영적 공간의 소중함이 더 절실해진다." 페인팅(painting)과 플랜팅(planting)이 다르지 않기에, 그의 농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무궁화나 벚꽃 등 한국적인 식물을 재배해보고 싶다"고 했다. 문화는 재배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