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베네수엘라에 휘발유를 팔기 위해 유조선 다섯 척을 보냈다. 미국은 이란 유조선의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 진입을 경고하며 전함 네 척을 배치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두 나라의 거래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카리브 해역에 새로운 전선(戰線)이 형성되는 양상이다.

베네수엘라로 가는 이란 유조선 다섯 척의 총적재량은 15만5000t으로, 국제 원유 전문가들은 4450만달러(약 550억원)의 휘발유 등이 적재된 것으로 본다. 미국은 카리브해에 네 척의 미 해군 전함과 P-8 대잠(對潛)초계기를 배치해 훈련 중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17일(현지 시각) "이란 유조선을 차단할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미 재무부와 해안경비대도 14일 "고의로 이란산 휘발유를 거래하고 운송하면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했다.

이란 유조선 5척이 도착할 베네수엘라 주변 카리브해에서, 지난 16일 미 해군 구축함 3척과 연안전투함 1척이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자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부 장관은 17일 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 "미국의 해적 행위가 연료 수송을 방해하며, 미국은 이로 인한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이란 정부는 또 이란에서 미국을 대신하는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를 불러 "이란 유조선에 대한 어떠한 위협도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두 나라는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5월 이란과 맺은 기존의 핵 동결 합의를 "미약하고, 또 다른 위협인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막지 못했다"며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그리고 이란을 강력한 핵·미사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고 국제사회의 이란산(産) 원유 수입을 막았다. 또 마약 밀매·인권 유린 등의 이유로 2006년 이후 계속 제재를 해왔던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도 강력한 금수·금융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이란은 원유 금수 조치에도 중국과 주변국들에 계속 원유를 팔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최대 수입국인 중국 측 수요가 60%나 격감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이지만 정작 정유 시설이 관리 부실로 낡을 대로 낡아 극도의 휘발유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이란 유조선 다섯 척은 이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한 정유 시설에서 휘발유를 선적했으며, 17일 현재 한 척을 제외하곤 모두 지중해를 빠져나와 대서양을 운항 중이다. 빠르면 이달 말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인근 해역에 도착한다.

이란이 휘발유 거래를 강행할 경우 미국과 긴장 상태를 빚을 가능성이 크다. 작년 7월 영국 해군이 미국 요청에 따라 영국 주권인 지브롤터 해협에서 시리아로 향하던 이란 유조선을 나포하자, 이란은 즉시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국 국적의 유조선을 보복 나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