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또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판매를 제한하는 초강력 제재를 발표했다. 대놓고 "국가 안보 결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키운 IT 기업 화웨이의 목줄을 조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해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생산 업체에 약 3조원의 국영 펀드를 추가 투자키로 했다. 산업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고도의 전략적 가치를 갖는 반도체 산업을 놓고 미·중이 국가 차원의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이미 반도체는 일개 산업 분야가 아니다.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미국 내 생산 기지를 새로 만들라고 요구, 반도체 생태계의 재구축을 꾀하고 있다. 인텔은 작년 말 신개념 메모리 반도체 'P램'을 내놓으면서 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17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반도체 굴기'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경쟁에서 한국에 패했던 일본까지 인텔·TSMC의 생산·개발 거점을 유치하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강대국은 정부가 반도체 전쟁의 총대를 메고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는데 한국 정부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10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전부다. 10년간 170조원을 쓰겠다는 중국과 비교할 수도 없다. 삼성전자 평택 공장의 송전선 연결 문제 하나가 해결되지 않아 몇 년간 골탕을 먹었다. 해외 경쟁자들이 눈독 들이는 삼성 반도체 공장의 기밀을 정부가 공개하겠다는 자해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 52시간 규제가 연구·개발 발목을 잡고,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게 한 화학물질 관리 규제법도 시행됐다.

한국 전체 수출의 20% 이상이 반도체다. IT 제품은 물론 각종 정밀 무기에 필수적이다. 반도체 산업 보유 자체가 국가 안보적으로도 대단한 버팀목이 된다. 우리 기업들은 혼자 힘으로 이런 전략 산업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제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전쟁을 시작했다. 판도가 어떻게 바뀌고 우리에게 어떤 압력이 들어올지 알 수 없다. 바깥에서 태풍이 다가오는데 우리 기업들 최대 관심사는 여전히 검찰 수사와 재판이다. 해외 기술업체 인수·합병은 몇 년째 올스톱이다.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