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한국판 뉴딜에는 ‘그린’과 ‘사람’이 없다. 다행히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콕 집어 그린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해 ‘그린’은 일단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그린 뉴딜은 그 자체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대통령의 주장이 정책 수립 단계에서 실제로 ‘사람’을 구해낼지 지켜볼 일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사용해온 용어로 정리하면 ‘사람이 중심인 그린’을 추진해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겠다며 기술 개발에만 투자하면 결국 회색으로 탈색된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전철을 되풀이할 뿐이다. 기술 못지않게 과학에 투자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자연 훼손에 의해 벌어졌음이 자명한데 자연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에 투자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다. 이참에 생태계 모니터링과 야생동물 연구를 위한 연구비 지원 체계를 따로 마련하라. 그러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을 막아줄 생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실험실 연구와 기술 개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생태 백신'도 개발비가 필요하다.

그린 뉴딜은 반드시 인건비를 최우선으로 포함하는 사업들로 구축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손품·발품이 많이 들면 경제성이 없다고 배제됐지만 새로운 세상에서는 그래야 일자리도 늘고 덩달아 삶의 질도 높아진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답답하고 따분한 실내 작업은 기계에 맡기고 육체와 정신 건강 모두에 좋은 야외 활동은 우리가 손수 하며 즐기면 된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단순한 토목 사업 부활이 아니었다. 노사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사회보험을 도입해 소외된 약자들을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포함해 ‘새로운 미국’을 건설한 혁명이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례없이 막강한 정권을 허락한 국민은 혁명적으로 새로운(new) 계약(deal)을 기다리고 있다. 쪼잔한 땜질과 덧대기 정책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