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전까지 최고 구속 148㎞의 직구를 던지며 가능성을 뽐내던 이승헌. 대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5.17

"빨리빨리 나와야지, 머리 맞았는데!" "빨리 좀 안됩니까?"

쓰러진 이승헌을 미안한 마음에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정진호. 대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5.17

철렁, 하는 순간이었다. 롯데 자이언츠 신예 이승헌이 타구에 머리를 강타당하며 쓰러졌다. 소위 '센터 앞'을 노리는 강한 타구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이승헌은 그대로 마운드 위를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라운드는 물론 지켜보던 기자실에서도 비명이 터진 아찔한 사고였다.

이동용 침대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이승헌의 모습. 대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5.17

안타고 뭐고 즉각 경기를 중단시킨 주심의 조치는 옳았다. 마운드로 몰려든 선수단은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하는 이승헌에게 "편하게 누워있으라"고 조언하며 황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타구의 당사자인 한화 이글스 정진호는 시종일관 이승헌을 주시하며 미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경기 후 야구 커뮤니티에는 의료진의 뒤늦은 대처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TV화면상 구급차의 진입이 너무 늦었고, 의료진의 조치가 허술했다는 것. 이날 SBS스포츠 경기 중계에는 주심 등의 마이크를 통해 현장의 급박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실렸다. 구급차 진입에 앞서 "머리 맞았는데 빨리 좀 나오지"하는 원망이 들렸고, 조치 중인 의료진을 향해 "빨리 좀 해달라"며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 22세 어린 투수, 부상 부위가 하필 머리인 만큼 그를 걱정하는 야구계 동료들의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지만, 이후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이승헌의 응급 조치는 과연 늦었을까. 한화 구단에 따르면 사고 직후 심판의 구급차 콜 사인이 나오기까지 17초, 구급차가 마운드까지 진입하는데 30초가 걸렸다.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의 체감보다 빠르게 조치가 이뤄졌다.

시청자와 현장 의료진의 현실적인 행동간의 괴리 때문이다. 야구팬들로선 딱 하는 사고 순간, 그리고 '타임!'이라는 심판의 외침, 마운드 위로 뛰어올라가 선수의 상태를 살피는 주심과 선수단의 움직임 등이 모두 카운트된다. 여기에만 얼추 50여초가 소요됐다. 그러니 시청자들로선 의료진의 움직임이 굼뜨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규정상 구급차가 경기장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심의 콜사인이 필요하다. 사고 순간과 별개로 구급차의 움직임은 주심의 요청 이후부터 시작된다는 얘기다.

또 시청자들의 눈길은 외야 폴 쪽의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구급차에게 쏠렸지만, 구급차에 앞서 의료진은 주심의 콜사인이 떨어진 직후 이미 경기장 안으로 진입해 이승헌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들이 이승헌에게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사고로부터 약 30초였다. 이들은 구급차 내부가 아니라 포수 뒤쪽 좌석에 대기한다. 유사시 가장 빠르게, 구장 내 사고가 잦은 내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단 측에 따르면 이날 경기장내 의료진은 정형외과 의사 1명, 응급구조사 1명, 간호사 1명이었다. 중계 카메라에도 잡혔듯 이들은 우선 이승헌의 얼굴 앞에 손을 움직여가며 의식을 확인했다. 이어 타구에 맞거나 쓰러지는 과정에서 경추가 손상되지 않았는지 살폈다. 눈앞에서 어린 투수가 쓰러지는 것을 본 선수과 심판들, 시청자들의 애타는 마음과 별개로 의료진은 냉정해야 한다.

외상 환자는 사고 현장에서 환자의 상태 파악이 우선이다. 자칫 환자를 급하게 옮기려다 더 큰 부상을 부를 수 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애가 타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는지는 비전문가가 아닌 의료진이 판단할 문제다. 의료진의 진입 여부는 심판이 요청하지만, 일단 의료진이 진입한 뒤 상황에 대한 권한은 안방팀인 한화 이글스나 이승헌의 소속팀인 롯데 자이언츠, 소속 단체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아닌 의료진이 갖는다. 한화 구단 측에 따르면 의료진은 '환자(이승헌)에게 경추 관련 이상이 없고, 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동용 침대를 이용해 구급차에 실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흔히 응급 상황의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시간은 3~4분이다. 구급차가 마운드에 도착한 시간부터 이승헌을 싣고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분 15초에 불과했다. 이는 중계 화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의 야구인들이나 팬들이 이승헌을 걱정하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의료진이 더 빠르게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의 눈으로 의료진을 섣부르게 비난해서는 안된다.

한국 야구사의 비극으로 남은 고 임수혁 때와는 다르다. 현장에 상시 대기하는 의료진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임수혁은 2루에서 쓰러진 직후 구단 트레이너와 선수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덕아웃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 출발한' 구급차와 의료진에 인계되기까지 전문가의 조치를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KBO리그는 달라졌다. 현장에 가까운 병원의 구급차와 의료진이 상주하며 유사시 조치에 나선다.

이날 이승헌은 충남대병원으로 후송됐다. 한화 구단 측은 "의사가 구급차 안에 타고 후송 중에도 의료적인 조치를 취했다. 롯데 구단 트레이닝코치도 동행했다"고 설명했다. 정밀 검사와 CT 촬영을 마친 결과, 이승헌은 두부 미세 골절 및 출혈 소견을 받았다. 이승헌은 입원 후 상태를 지켜보며 향후 부산 이송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 선발 맞대결 상대였던 한화 김민우는 "퇴근 후에 병원에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한용덕 감독도 "승패를 떠나 롯데 이승헌 선수의 부상이 걱정된다. 하루빨리 쾌차하길 빈다"는 우려를 전했다. 야구인은 물론 이날 경기를 지켜본 모두의 마음이다.

대전=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