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은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탈원전으로 원가가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리면 한전의 적자가 커지고, 이는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료는 태양광 패널에 들어가는 셀(전지)의 제조원가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전기료가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싼 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국산에 맞서 국산 제품이 경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자가 누적된 한전에 산업용 전기료를 더 낮출 여력은 없다. 전력 생산 비용이 저렴한 원전 가동은 줄이고 값비싼 신재생·LNG 발전을 늘리면서 지난해 한전은 창사 이래 둘째로 큰 1조2765억원 영업 손실을 냈다. 2015년 107조원이었던 한전의 부채는 작년 128조원으로 늘어났다. 한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大選) 공약으로 추진 중인 한전공대 설립·운영 자금 1조6000억원도 부담해야 한다.

한국 원전 수출 1호 바라카의 환호… 이런 순간 다시 올까 - 두산중공업과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2017년 12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바라카 원전(총 4기)은 국내 원자력 기술로 만든 최초이자 유일한 해외 원전으로, 1호기는 올 하반기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해 앞으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데이터 센터 등 전력을 많이 쓰는 산업 분야가 확대되면서 원전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 산업 분야들은 값싸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우리 원전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전력원이라는 것이다.

미래 첨단 소재 산업 역시 전기료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독일 자동차업체 BMW는 전기차 i3의 차체 소재인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공장을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모세 레이크(Moses Lake) 공장에 두고 있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 공장을 둔 이유는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이다. 모세 레이크는 인근 수력댐에서 공급되는 값싼 전기를 공급받는다. 워싱턴주는 풍부한 수력발전 덕분에 산업용 전기료가 미국 평균의 절반(54%)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첨단 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원전 제로 정책으로 전기료가 급등하자 일본 소프트뱅크는 그해 5월 전력 소비가 큰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설립하기로 결정했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인상돼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 우리 기업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