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한이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 3월이면 국내에서 건설 중인 마지막 원전인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설비 납품이 끝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향후 더 이상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도, 노후 원전 수명 연장도 없어 신고리 5·6호기 설비 납품이 끝나면 두산중공업 원전 공장은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 일부 유지·보수 부품 제조를 제외하면 기존 원전 공장의 80%가 가동 정지된다. 두산중공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원전 협력 업체들은 이미 업종 전환 혹은 폐업으로 원전 생태계에서 이탈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4년간 자국 내에 원전을 짓지는 않았지만, 핵무기·핵 추진 항모·잠수함 등 군사 분야의 연구 개발, 제조 분야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7만여 명이 원자력 분야에 종사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두산중공업과 협력 업체들이 무너지면 40여 년간 축적해온 원전 분야 경쟁력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원전 분야의 연구 개발 역량과 산업적 경쟁력을 영구적으로 잃게 되는 것이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내년 3월이 지나면 한국의 원전 산업은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접을 경우 큰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온실가스 배출이 없으면서 안정적인 전력원인 원전에 대한 수요가 커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 원전 시장 장악을 막기 위해 자국 원전 산업 부활 전략을 내놓은 것도 호재다. 우리가 원전 독자 시공 능력이 없는 미국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고 해외 원전 시장에 공동으로 진출할 경우 막대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