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 교수는 “태종과 문재인 대통령은 비교 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주 여당 정치인과 전·현직 청와대 대변인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시대의 태종·세종에 견주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통령을 개혁 군주, 성군(聖君)에 빗대 ‘문(文)비어천가’란 얘기도 나온다. 박현모(55)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은 “두 군주의 리더십 핵심은 들여다보지 않고 성군(聖君) 이미지만 소비한다”며 “역사를 끌어들이는 수준과 품격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세종처럼’ ‘정조평전’을 낸 박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정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군주의 리더십을 연구해온 중견 정치학자다.

―대통령을 왜 태종·세종에 비유했을까.

"총선 압승에 대한 집권층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 같다. 지난 3년은 준비기였고, 앞으로 세종처럼 안정된 시대를 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해찬 대표가 '100년 집권'까지 얘기하지 않았나. 세종을 얘기하기 위해 태종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현 대통령을 태종에 견주는 게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가.

"태종은 후계자 세종의 통치 기반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외척과 권신(權臣)을 철저히 제거했다. 태종 집권에 혁혁한 공을 세운 처남 민무구·무질 형제를 비롯, 세종 장인인 심온까지 처단했다. 태종식 '적폐 청산'은 국가 경영에 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에 도움을 준 '친문(親文)'세력을 어떻게 대했나.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한 태종과는 한참 다른 모습이다."

―태종 정치 리더십의 핵심은 뭔가.

"태종이 가장 잘한 것은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발탁한 것이다. 세종시대 주역인 황희, 변계량, 조말생, 최윤덕, 장영실은 모두 태종이 키운 사람이다. 황희는 고려에 충성하던 두문동 세력이고, 변계량은 숭유억불의 나라 조선에서 불교 신자였다.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운 최윤덕 장군은 무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좌·우의정까지 올랐다. 코드만 따지고 자기편만 쓰는 문 대통령을 태종과 비교할 수 있나."

―국가를 위해서라지만, 태종의 숙청은 지나치게 냉혹하다.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것은 공직자, 정치인의 출발점이다. 사익(私益)을 위해 이용한다면 정치인이나 공직자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다. 태종은 민무휼·무회까지 처남 4형제를 모두 죽였다. 사사로운 집안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산하기관 곳곳에 친문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이 정부 사람들이 태종을 제대로 알고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토론에서 세종을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꼽았다.

"문 대통령이 2018년 한글날 세종대왕 영릉에 왔을 때, 세종에게서 뭘 배웠으면 좋을지 물었다. 세종 어록(語錄)을 인용해 '우선 있는 걸 고치고 도저히 안 되면 바꿔라(改心易慮)'고 답했다. 세종은 점진적 개선에 힘썼다. 이 정부는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등 한꺼번에 다 바꾸려 하니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역사를 자기 옹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인들이 고대 로마 역사를 자랑하지만 정작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치인들이 역사를 일회용 소모품처럼 쓴다. 역사를 멋대로 도구화하면 품격을 잃고 웃음거리가 된다."

―요즘 시대에 정치 지도자를 군주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 아닌가.

"동의하지 않는다. 시대는 바뀌어도 역할은 남는다. 대통령을 군주에 비유한다고 해서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한 나라가 당면한 과제를 놓고 사회 구성원의 뜻을 수렴해서 결정해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

박 교수는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로 마무리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역사 연구의 목적은 과거를 치켜세우거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보는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역사가 권력자를 미화하는 데 쓰이는 것을 경계하는 일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