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언 것들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해 보채듯 뒤척이던 바다 앞이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을 세니 봄이었다 메말랐던 자리마다 소식들 닿아, 푸릇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제야 당신에게서 꽃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오는 것만은 아니고, 오다 오다가 주춤대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이상토록 좋았다 가만할 수 없이 좋아서 의자가 삐걱대었다 하나 둘 셋, 하고 다시 열을 세면 꽃 지고 더운 바람이 불 것 같아, 수를 세는 것도 잠시 잊고 나는 그저 좋았다.

―유희경(1980~ )

바닷가입니다(우리나라는 늦어도 한나절 안쪽이면 바닷가에 닿는 나라입니다). 바다는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해변, 항구, 방파제, 뱃고동, 파도, 큰 파도, 썰물, 조금, 사리…. 게다가 이별도, 기다림도 다 바다의 사업입니다. 모퉁이에 빈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든 앉는 이가 주인입니다. 기다림이 전문인 사람이 주로 앉습니다. 곱은 손을 꼽으며 기다립니다. 누구를 기다리느냐고요? 무엇을 기다리느냐고요? 겨울이 ‘언,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하는’ 시절의 손 얼어가는 이에게 간절한 것은 봄이지요. 어느덧 봄입니다. 그러나 ‘당신’ 없는 봄의 꽃은 꽃이 아님을 알아차립니다. 하여 다시 기다립니다. 봄은 시원스레 오지 않습니다. 시쳇말로 ‘밀당’을 하며 옵니다. ‘의자가 삐걱’댑니다. ‘다시 하나 둘 셋’ 하며 결핍의 봄을 셉니다만 봄은 ‘더운 바람’ 부는 여름으로 그대로 건너뛸 형국입니다. 바닷가 빈 의자에 봄은 결국 오지 않을 듯합니다. ‘그저 좋았다’는 말 속에 높은 체념의 습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은 아닙니다. ‘봄’의 이면의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