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가 뜻하지 않은 구설에 휩싸였다. 비중 있는 아역배우들이 과거 인터넷에 올린 글과 사진에서 일탈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막 주목받기 시작한 아역들은, 캐스팅이 되기 위해 쏟았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자업자득이라지만 그들이 가진 꿈의 크기를 알기에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한때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일하며 많은 아역배우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비록 몸집은 작지만 꿈을 향한 열정만은 어른 못지않았다. 예전엔 어린이 프로그램도 스튜디오 사정상 하루에 일주일치 분량을 몰아 찍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른 아침 녹화에 들어가면 점심, 저녁 먹어가며 새벽이나 돼야 일이 끝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녹화가 있는 날이면 아역배우들이 보호자와 함께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스튜디오로 몰려드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이들은 무대 뒤에 돗자리를 깔고, 중간중간 그곳에서 간식도 먹고 의상도 갈아입으며 긴 시간 녹화에 임했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녹화가 길어질수록 지쳐서 자꾸 돗자리에 누우려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미성년자는 밤 10시 이후엔 촬영할 수 없도록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아역배우들의 일은 스튜디오 녹화로 끝나지 않았다. 야외촬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하루는 꼬박 야외촬영에 임하고, 대사 연습이나 춤·노래 등을 배우려면 또 며칠이 필요했다. 이런 빡빡한 제작 상황이 오히려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실제로 그때 만난 아역배우 대부분을 이젠 TV에선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일을 한때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떠난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영화 '기생충'은 제작 당시 아역배우가 폭염에 촬영하는 것을 피하려고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했다고 한다. 제작비가 훨씬 더 들어갔을 것이다. 또 아역들이 일찍 촬영을 마칠 수 있도록 성인 배우들이 스케줄을 조정해 줬다고 한다.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라는데, 우리 방송 제작에도 언젠간 도입되리라 기대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꿈을 이루고 더 오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