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각) 코로나 확산에 대한 중국 책임론과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책임론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을 향해 경고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는다면 5000억달러(약 615조원)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연간 수입액인 5000억달러가량을 아낄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미·중이 1단계 무역협정에 합의한 직후 코로나가 확산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중국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좋은 관계지만 지금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회계 기준을 따르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중국 기업들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어 "코로나 발병은 세계화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 상·하원 외교위원장·간사들은 최근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참여를 지지해 달라"는 공동 명의의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냈다. 코로나 이후 미·중 갈등의 주요 전장(戰場)이 된 WHO에서 한국에 '지원 사격'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 관례상 주고받는 사항은 양쪽이 합의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라며 서한의 접수 여부조차 밝히지 않았다. 또 하나의 '중국 눈치 보기'란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은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코로나 협력에 대한 통화를 했다. 일각에선 "시 주석이 대만 문제에 대한 협조를 당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한·중 양국이 공개한 통화 내용에는 그런 대목이 없었다.

미 의회는 지난 8일 한국을 포함한 55국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발송했다. 이 중 독일, 일본, 뉴질랜드는 이미 대만을 세계보건총회(WHA)에 초청해야 한다는 '외교 공한'을 미국과 공동으로 작성해 WHO에 보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한국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 방한을 적극 추진 중인 정부가 중국 심기를 거스를까 봐 미국의 요구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의 서한은 첫 문장부터 "세계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 19의 확산과 싸우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모든 국가가 정치보다 세계 보건과 안전을 우선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말로 중국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정부도 미국과 함께 대만을 국제기구, 특히 WHO에서 배제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끝내는 데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지난 7일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440명밖에 나오지 않은 대만은 "세계 보건의 믿을 만한 파트너"란 것이다.

그러면서 미 의원들은 오는 18~22일 열릴 WHA 화상회의에 대만을 초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친중 성향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현 사무총장이 대만을 초청할 가능성은 낮다. 미 의원들은 "2009~2016년 대만은 WHA에 매년 초청받았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만 지도자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취임 이후 중국 정부는 WHO와 다른 국제기구들에 WHA를 비롯한 각종 회의에 대만을 포함시키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했다.

미 의원들은 중국의 행동을 "깡패 같다(bullying)" "UN을 조종한다(manipulate)"고 비판했다. 미 상원은 대만을 옵서버 국가로 WHO에 가입시키는 법안을 12일(현지 시각)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