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 문학평론가

베테랑 낚시꾼이라도 고기를 못 잡을 때가 많다. 돈 잃고 기분 좋은 노름꾼이 없는 것처럼, 고기 못 잡고 기분 좋은 낚시꾼은 없다. 낚시꾼은 '바다가 주는 만큼 얻어간다'고 점잖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더 많이 잡기 위해 고기를 못 잡은 원인을 면밀히 파악한다. 낚시란 게 자연을 상대하는 거라 계절적 동향과 물고기의 생태적 특성을 파악해야 좋은 조황을 올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해 근해 우럭의 경우, 보리가 익고 밤꽃이 피는 6월과 벼를 추수하는 10월 중순 이후 약 한 달 동안 잘 잡힌다. 갈치는 추석 무렵부터 12월까지가 호조황이고, 열기(불볼락)는 12월 말부터 3월까지가 적기다. 계절별로 잘 잡히는 어종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물고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잘 이해하는 것도 관건이다. 대개의 직장인은 주말에 출조를 하지만, 물고기들은 직장인의 타이밍에 맞추어 꼭 주말에만 잘 잡혀주는 게 아니다.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의 시간이 따로 있다. 그게 바로 '물때'다. 조금과 사리,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고기의 먹이 활동은 다르다. 하지만 물때와 바람과 수온 같은 조건이 맞았음에도 '봉돌이 우럭 대가리를 때려도 안 문다'는 낚시꾼의 속담처럼, 고기가 안 잡힐 때는 수없이 많다. 도대체 왜 고기가 잡히질 않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일본에서 지진이 나면 우리나라 서해 물고기가 귀신같이 알고서 전혀 입질을 안 한다. 똑똑한 우리나라 물고기다. 물이 너무 맑아도 반대로 물이 탁해도 입질이 없다. 비가 오래 오지 않아 염도가 높아도 반대로 비가 많이 와서 염도가 낮아도 안 된다. 복어 새끼나 멸치나 보리멸이나 망상어 같은 잡어들이 설쳐서 낚시가 안 될 때도 많다. 해파리가 떠밀려 와도 안 된다. 안개가 껴도 안 되고 기압이 낮거나 높아도 안 된다. 흐린 날이거나 동풍이 불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굿둑 수문을 열어서 혹은 수문을 너무 오래 안 열어서 안 될 때도 있다. 조류의 방향이 안 맞으면 특히나 안 문다.

달이 밝으면 안 된다. 월명(月明)이라고 해서 갈치 낚시는 특히 보름 주변에는 낚시가 안 된다. 보름달 때문에 집어등의 집어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믐 때라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다. 파도가 전혀 없어도 안 된다. 미끼가 싱싱하지 않아서 안 되기도 하고, 하필 특정 미끼가 없어서 못 잡기도 한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불빛이 있어서 혹은 불빛이 없어서 안 되기도 한다. 물속에 상괭이(서해 돌고래)가 와도 낚시가 안 된다.

장비가 안 좋아서 안 되기도 하고 잘 잡는 배들이 다 잡아가서 못 잡기도 하고, 옆 사람이 너무 잘 잡아서 내가 잡을 물고기를 싹쓸이해가서 안 잡히기도 하고, 내 옆 사람이 너무 못해 봉돌로 바닥을 쳐 물고기를 다 쫓아 보내서 안 되기도 한다. 선상 낚시의 경우 옆 사람이 줄을 너무 풀어, 온종일 줄이 엉켜서 낚시를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선장이 한쪽으로만 배를 대어서 못 잡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누군가가 '오늘은 꼭 많이 잡아 오세요'라고 해서 고기가 안 잡힌다고 핑계 대는 한심한 꾼도 있다. 이렇게 낚시가 안 되는 이유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번뇌만큼이나 많다.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최소 108가지는 된다.

하지만 낚시꾼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이 바로 낚시의 궁극적인 매력이다. 황동규 시인의 표현처럼 낚시는 '우연에 기댈 때'가 더 많다. 우연히 대박이 날 때가 있고 기대하지 못한 대어를 낚을 수도 있다.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그런 희망에 차서 꾼들은 또다시 출조를 감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