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조순형 전 국회의원)가 지난 11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토론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범(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성철(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성호(연세대 정외과 교수), 김준경(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손지애(이화여대 초빙교수), 위성락(전 주러시아 대사), 이덕환(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한은형(소설가) 위원, 홍승기(인하대 로스쿨 원장) 위원이 참석했다. 김태수(변호사), 정유신(핀테크지원센터장)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왼쪽부터 김준경·손지애·김성호·한은형·위성락 위원, 조순형 위원장, 김경범·이덕환·김성철·홍승기 위원, 차학봉 편집국 부국장.

―4·15 총선 결과는 여야 간 워낙 현격한 의석 차에 의해서 대의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완전히 실종되는 위기에 처했다. 제1 야당이 참패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다. 언론의 기본 사명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감시·견제다. 언론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대표적 정론지로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견제·감시 역할과 사명이 막중해졌다.

―정치면에서 총선 판도를 보수·진보 틀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수'라는 말에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보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래되고 늙고 타락했다는 이미지다. 그래서 보수·진보로 양분하는 게 맞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 성향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 '평등' '자유' '자율' 등 '가치'의 차이를 두고 비교해야 한다. 보수·진보 프레임에서 벗어나 앞서가는 정치 성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간신 토벌에 나섰던 日 청년 장교들의 오판〉(4월 30일 오피니언면) 칼럼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거론하며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고 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1930년대 일본 쇼와시대에 벌어졌던 군국주의자들의 행태를 우리나라 보수 우익이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얘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더구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나.

―'보수와 진보' 구분을 '통합당 대(對) 민주당' 구도로 고착화시킨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 정부와 민주당의 포용국가 개념에서 포용은 진전되고 있지만, 성장을 위한 정책은 없다. 앞으로 정부가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 기존 보수·진보 이분법에 혼란이 생긴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수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보수적 가치를 지켜야지 보수 진영을 지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말고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보수의 가치와 통합당 사람들을 분리할 필요가 있고, 오히려 보수의 철학을 구현하는 새로운 사람과 집단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 유고 관련 보도가 맞지 않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책잡힐 일은 아니다. 틀릴 수 있다. 문제는 아무 경험이나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끼어들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언론이 써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끼어든 것이다. 정치인도 사이비 학자도 여럿 있다. 그걸 자꾸 써주면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가 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이번에 맞지 않았던 사람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가 배제해야 한다.

―요즘 우리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기 때문에 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자신감이 널리 퍼져 있다는 보도가 많다. 하지만 야구로 치면 2회말도 아닌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자신할 상황은 아니다. 만약 3회말쯤 홈런이라도 얻어맞으면 뿌듯한 자신감이 엄청난 자기비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전자팔찌를 안전밴드로 이름을 바꿔 추진하고, 이태원 클럽 방문자 동선을 전수조사 하는 등 인권침해 소지를 언론이 촉각을 세우고 감시해야 한다.

―〈당신이 어젯밤 9시 어디 있었는지 다 보인다〉(5월 8일 B1면)는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개인 정보 유출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근 '데이터 3법' 개정안에 따라 빅데이터를 활용하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비(非)식별 정보만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자칫 코로나 사태가 이런 법 취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민간 기업은 비식별 정보를 추리느라 고민하는 반면, 정부는 방역 같은 명분만 있으면 손쉽게 방대한 개인 식별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강해지면 주요 정보가 공공 부문에 몰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K방역'의 핵심이 자유민주주의적 투명성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인권이 없고 프라이버시가 없는데 어떻게 방역 선진국인가. 'K방역'의 핵심은 진단과 추적이다. 지자체의 확진자 동선 공개를 보면 끔찍하다. 확진자들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지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도 없다. 교육부가 개학을 앞두고 만든 가이드라인도 구체성이 없어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허술한 측면을 지적해야 한다.

―〈만물상: 정은경의 업무추진비 5만원〉(4월 27일 오피니언면)을 보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업무추진비로 5만800원을 쓴 게 횡령 등 나쁜 사례에 비하면 모범 사례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비상시국에 질본 본부장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고 사람을 만나지 못해 업무추진비를 쓰지 않은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니다. 질본 본부장은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코로나 관련 종합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업무추진비 5만원을 쓴 것을 칭찬하는 것은 중대 사안의 이면을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경제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책에 정작 필요한 규제 개선은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에 대한 시대착오적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술을 활용해 제조업 제품 생산 가치 사슬에 서비스 중간재가 투입되는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확대해야 한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씨젠을 비롯한 40여 바이오테크 중소기업이 긴급사용승인(선허용, 후규제) 제도를 통해 진단 키트를 신속히 개발한 것이 좋은 사례다. 한국형 뉴딜이 성공하려면 규제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 e스포츠 생중계에… 지구촌 1780만명이 접속했다〉(5월 2일 A2면), 〈日 만화 꺾고 美사이트 1위… K웹툰, 집콕세계 사로잡다〉(5월 5일 A2면)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e스포츠와 웹툰을 크게 다루었다. e스포츠는 단순 게임이 아니라 종합산업으로 발전했다. 만화도 이제 웹툰이다. 'e'와 '웹(web)'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기사는 아날로그식 게임과 만화 관점에서 썼다. 새로운 디지털 현상을 아날로그적 잣대와 프레임으로 분석하는 게 아쉽다. 웹툰을 안 보고 게임을 안 하고 그냥 감(感)으로 쓴 것 같다. 이런 걸 다루려면 실제로 해보고 관련 현상을 다뤄야 한다. 새로운 감각의 젊은 독자층 관심을 끌고, 디지털적이고 새로운 문화적 주제를 다루려면 이를 이해하고 실제로 생활화하는 사람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난데없이 車道로 확~ '킥라니(킥보드+고라니) 규제법' 4년째 제자리〉(5월 5일 사회면) 기사는 앞에서 킥보드가 위험하다는 얘기를 하고, 뒤에서는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논지다. 이는 타다·에어비앤비처럼 빨리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보행자 안전에 미흡한 점이 많은데, 이런 위험성을 간과하고 킥보드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한 후 시장직을 사퇴하고 잠적했다. 지방자치법을 보면 지자체장이 사임하려면 지방의회 의장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기자회견만 하고 잠적했다면, 그는 사임한 게 아니다. 지자체장에 대해 지도·감독할 수 있는 중앙정부도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이 부산시의회 의장에게 서면으로 사임을 통지하지 않았을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오 전 시장에게 즉시 복귀 명령을 내려서 사임에 따른 법적 절차를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언론이 지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