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근무 시절 소위 ‘한·일 과거사 업무’를 담당할 때 일이다. 각종 유족회, 시민 단체의 민원 처리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이던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무궁화 자매회 탄원서’라는 서류를 건네며 자신은 위안부 피해자라고 말문을 열었다. 피해자 33인이 모여 결성한 무궁화회에는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을 수령한 회원들이 있는데, 모 시민 단체의 반대로 이들이 한국 정부의 생활 지원금 수급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 정부가 이를 시정해 달라는 것이 민원의 요지였다.

하소연이 이어졌다. 왜 피해자인 자신들을 놔두고 지원 단체가 정부와 협상하고 모금하는 것인지, 누가 그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한 것인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모 단체와 감정 대립이 있었는지 그들에게 인격 모독을 당해 분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위안부 피해자에도 여러 그룹이 있고 각자 다양한 사정과 입장이 있었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피해자 의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모두 이의가 없다. 2015년 정부 간 합의는 지원 단체들과 일부 피해자의 격렬한 반발로 내내 파행을 겪다가 끝내 파기되었다. 그러나 막상 화해·치유 재단이 설립된 이후 생존자 47명 가운데 35명이 보상금을 수령했다. 무엇이 진정한 피해자 의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들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지만 정부, 유관 단체, 언론 모두 자기 편의에 따라 피해자 입장을 자의적으로 이용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피해자의 집합적 의사를 확인하고 공식화하는 절차와 방법이 존재한 적도 없다. 위안부 문제는 보기에 따라서는 한·일 간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는 기회가 있었다. 피해자 의사 우선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증오와 불신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피해자와 양국 모두에 불행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