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논설위원

현 정권 출범 초에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 한(恨)을 풀어줄 기회를 가진 마지막 정부'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할머니들이 워낙 고령이어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외교부는 위안부 TF를 꾸려 '아베 총리의 사과,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 출연'을 골자로 하는 전 정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피해자 의견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활동 종료 후 TF 위원장을 맡았던 친정부 신문 출신 인사는 일본 지역 총영사 자리를 받고 나갔다. TF에 참여했던 전직 외교관은 외교부 차관으로 금의환향했다. 역시 TF 위원이었던 인권단체장은 유럽 지역 대사에 발탁됐다. 피해자들 대리인 격인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여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이렇게 '박근혜표 위안부 해법'을 폐기한 인사들이 영전하는 동안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 2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 남아 있는 할머니는 18명뿐이다. 이들도 평균 93세가 넘어 당장 몇 달 후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문재인표 위안부 해법'은 아무 소식이 없다. 한·일 관계에서 폭발력이 몇 배 큰 강제 징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위안부 이슈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피해자 중 가장 정정하고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던 할머니는 "윤미향에게 속고 당했다"고 했다가 정권 지지자들로부터 '치매 노인' 취급받고 있다. 갑자기 그의 출신지(대구)를 문제 삼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그러니 할머니들뿐 아니라 위안부 운동에 성원을 보내던 국민까지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게 맞느냐"고 묻는 것이다.

지금 윤미향과 위안부 단체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위안부 운동 자체에 대한 폄훼가 아니다. 이들이 피해자들과 함께 사회적·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사욕(私慾)뿐이었다면 30년을 이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동력을 유지하고 위안부 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겐 의혹을 해명하고 허물을 털어낼 책임이 있다. 피해자 할머니가 시작한 문제 제기를 '친일파의 모략' 같은 물타기로 뭉갤 일이 아니다.

윤미향 당선인이 위안부 합의 전후로 입장을 바꿨다는 논란은 어렵지 않게 규명할 수 있다. 외교부는 일본과 합의 전에 윤 당선인과 면담한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당시 합의에 관여했던 인사는 기자에게 "면담 때 윤씨가 아베의 사과 문구 수준, 경제적 보상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반영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사과·배상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은 것을 넘어 긴밀히 협의했다는 얘기다. 위안부 운동의 목표는 일본의 책임 인정에 따른 사과와 합당한 배상을 받아내는 것이고, 소녀상 등은 이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피해자들 대리인이 "이 정도 사과·배상이면 됐다"고 하니 소녀상 문제에서 유연성을 보였다는 게 협상팀 측 주장이다. 만약 윤 당선인이 사과·배상 수준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외교부가 일방적으로 '소녀상 철거'를 약속하고 피해자 측에 알리지도 않았다면 '굴욕 협상'이라는 윤 당선인 주장에 힘이 실린다. 면담 대화록을 공개하면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위안부 TF는 '30년 비공개'가 원칙인 민감한 외교문서까지 공개하면서 "외교적 부분이 손상돼도 국민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가 간 협의도 아닌 시민 단체 면담 내용을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 윤 당선인도 '억울함'을 풀 기회이니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물론 위안부 운동 미래를 위해 빨리 논란의 일부라도 매듭지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