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이후, 카드사 고객센터에는 "재난지원금을 전화로 신청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몰리고 있다. 홈페이지나 모바일앱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연령층 고객들이 재난지원금 신청도 콜센터 상담원의 도움을 받길 원하는 것이다.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정부 긴급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매장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매장을 구분하는 기준이 복잡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에서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한가요"같은 문의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고객 요청에도 카드사들은 주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입'만 보고 있다. 정부 시행 사업을 대행하고 있는 만큼 행안부 허가 없이 신청 창구를 신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카드사들은 재난지원금 신청 준비 초기 단계부터 콜센터·ARS와 같은 '전화 창구'를 추가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신청이 몰리는 만큼 창구를 다변화하는 편이 좋고, 고연령층 고객의 콜센터·ARS 신청 수요도 클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고객이 카드사·은행 점포로 몰리는 것도 요즘 같은 시기엔 부담이다. 카드사 대부분은 "전화 신청에 필요한 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춰뒀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전화를 이용한 재난지원금 신청이 '피싱' 등 범죄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카드사 콜센터를 빙자한 사기 집단 전화번호가 문자메시지로 대량 유포되거나, 타인이 개인 정보를 이용해 재난지원금을 가로챌 수 있다는 취지다. 정부가 카드사들의 전화 본인 인증 시스템 수준이 인터넷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한 점과 상담 직원을 통한 카드사의 상품 판매 프로모션 우려도 작용했다. 개시 이후 행안부는 '전화 신청 허용'에 무게를 두고 논의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카드사에서 콜센터·ARS 창구 필요성을 강조한 건 알고 있지만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검토할 게 많았다"고 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정부가 카드사 요청 사항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했다면 어르신들이 덜 고생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난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행안부의 관료주의가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이미 신청 개시 당일부터 논란이 된 '재난지원금 기부 신청 절차'가 대표적이다. 행안부가 "재난지원금 신청 절차에 반드시 '필수 약관 동의'와 '기부 신청 동의'가 함께 들어가게 하라"는 취지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자 카드 업계는 수차례 "실수로 기부하는 신청자가 많을 수 있다"며 수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행안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개시 직후부터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버튼을 잘못 눌러 기부하는 실수가 이어졌다. "정부가 기부를 유도했다" "기부 함정을 파놓은 '기부 피싱'이 아니냐"는 비난이 이어지자, 행안부는 하루 만에 수정을 요청했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은 부랴부랴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수정했고 '기부 철회' 민원도 응대해야 했다.

'헷갈린다'는 여론이 많은 사용처 문제를 두고 카드사와 정부는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업형수퍼마켓(SSM) 중 예외적으로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했던 'GS더프레시'와 '이마트 노브랜드' 매장 때문이다. 카드사는 '재난지원금 카드 사용처는 아이돌봄포인트와 통일하라'는 지침에 따라, GS 더프레시와 이마트 노브랜드를 재난지원금 결제 가능 매장으로 안내해왔다. 하지만 해당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13일 오후에 정부는 카드사에 "GS더프레시와 이마트 노브랜드에서 재난지원금 사용을 제한(금지)해 달라"고 했다. 종전과 다른 '형평성'이 이유였다. 일단 카드사는 "이미 고객들에게 안내가 나가 수정이 어렵다"며 항변했지만 정부가 입장을 고수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을 이용한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 편의를 제공하려는 시도에도 제동을 거는 것은 곤란하다"며 "여러 상황에 처한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협력하는 카드사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카드사의 개설 요청을 아예 무시하거나 거부한 게 아니다"라며 "민관이 힘을 모아 전례 없는 사업의 걸음마를 뗀 단계인 만큼 미비한 점은 빠르게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