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우 사회정책부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감염에 대해 "예측 가능했던 방역 당국의 뼈아픈 실책"이라며 "일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발병 규모는 일주일도 안 돼 100명을 넘었다. 부산, 제주, 충북, 전북, 경남 등 전국 각지에서 확진자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에선 클럽을 갔다 온 20대 학원 강사가 학생, 학부모 등 10명 이상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 전문가 사이에선 "대구 신천지처럼 수천 명대 확진자가 나올 것"이란 경고까지 나온다. 학부모 불안감이 커지면서 고3 수험생들의 등교는 다시 1주일 연기됐다.

클럽, 주점과 같은 밀폐되고 밀집된 공간에서 '수퍼 전파'가 일어날 것이란 우려는 두 달 전부터 제기됐다. 주 고객층인 2030세대는 코로나에 걸려도 무증상이거나 가볍게 앓는 비율이 높지만, 활동성이 강해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퍼뜨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 3월 23일 질병관리본부의 초기 확진자 7755명 분석 논문 내용을 전하며 "젊은 층이 집과 직장에서 고령층에 바이러스를 옮기는 '코로나 불효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부터 조짐이 있었다. 대구의 10대 남성이 1주 전 부산 클럽을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클럽 운영 중단 권고가 있었지만 클럽은 문을 열었다. 클럽 출입자 명부엔 최소 480명의 이름이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알고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한다며 클럽 운영 중단 권고를 거둬들였다. 5월 초 황금연휴를 앞두고 하루 확진자가 열 명 안팎으로 줄자 "4·15 총선의 열기에도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K-방역의 세계적인 성과"라며 느슨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대구 의료 파견을 다녀온 공중보건의, 코로나 확진자 병동에 근무했던 간호사는 물론이고 군인, 교사 등 1만 명 넘는 청년들이 연휴 기간 이태원과 홍대의 밤을 만끽했다.

정부 내에서도 방역 당국은 경고의 목소리를 냈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달 26일 "클럽이나 주점 등 유흥 시설 이용이 늘고 접촉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한 명의 환자라도 '수퍼 전파' 사건으로 증폭될 수 있는 장소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달라"고 경고했다. 대한감염학회 등 전문가들은 "황금연휴 기간 방심을 틈타 전파가 이뤄졌는지 지켜본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조언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면적인 생활 속 거리 두기 단계로 넘어갔고, 그 첫날 이태원 클럽 첫 확진자가 나왔다. 'K-방역'의 핵심인 의료진들은 "지금의 우리는 대구·경북 소식에 숨죽이던, 자발적으로 거리 두기에 나섰던 그때의 우리가 아니다"라고 한다.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고,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 제2의 이태원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