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신 논설위원

국민 모두에게 준다는 코로나 재난 지원금은 경제 약자(弱者)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국민 개개인의 속마음을 떠보는 것이기도 하다.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정부가 전 국민에게 돈을 준다고 하면서 '받을지' '기부할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지원금을 누가 받았는지, 누가 받아서 다시 기부했는지, 아예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지 정부가 다 알 수 있다. 전국 2000만 가구의 선택을 분석해 분야·연령·지역·계층별 반응과 성향 파악도 가능하다. 어떤 부류가 공짜에 약하고 저항적인지, 어느 강도로 반대하다 굴복했는지, 국민을 실험 쥐처럼 다룰 수 있다.

대통령이 1호로 기부를 선언하니 5대 대기업 그룹이 장단을 맞췄다. 기부 찬가는 각계 지도층을 중심으로 번질 것이다. 그러면서 절대 "강요"는 아니고 "자발적 기부"라고 한다. 이런 이중적 태도가 싫은 사람은 아예 신청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신청을 안 하면 '거부'가 아니라 기부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민주당 방침이다. 통계상 '전 국민 지원금'에 대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 여론이 나오도록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사생활 침해는 물론 민의 왜곡 소지가 있다.

정부가 전 국민 지갑에 목돈을 꽂아주는 건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현금 배급은 말이 재난지원금이지 본질은 선거용이었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총선 전날 유세 현장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유권자 앞에서 돈다발을 흔든 것이다.

돈다발이 먹혔다고 판단한 것일까. 청와대와 민주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또 다른 돈다발을 꺼내 보이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민주당 소속 어느 도지사는 재난지원금이 한 번으론 부족하니 수차례 주자고 한발 더 나갔다. '공짜'를 시리즈로 퍼부을 기세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면세자가 많다. 전체 근로소득자 중 40% 이상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면세자 비율이 미국(30%), 일본(15%)보다 월등히 높다. 납세액으로 따지면 국민 10%가 세금 80%를 부담하고 있다. 세금을 전혀 안 내거나 적게 내면서 남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압도적인 수혜자 우위 구조다. 이 상황에서 '전 국민' 브랜드가 붙은 일련의 배급제를 놓고 국민적 논쟁이 붙으면 어느 쪽 목소리가 클지는 뻔하다.

이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노선으로 3년 내내 중산층은 얇아지고 빈곤층이 두꺼워졌다. 정부 도움에 기대어 사는 소득 하위층이 주류를 차지했다. '공짜 바이러스'가 대유행할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전 국민' 지원금은 정부가 지금까지 퍼트려온 공짜 바이러스 중 가장 강력하고 전면적이다.

공짜가 무서운 것은 누구나 한번 공짜를 받고 나면 다음 공짜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번 지원금을 '선거용'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로 받고 나면 나중에는 공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공짜가 공짜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이 생겨 온 나라가 공짜 잔치판이 된다.

한때 선진 강국 반열에 올랐던 그리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 정권이 벌인 공짜 잔치에 도취해 재정이 거덜나고 기업과 산업이 쇠락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이 나라들도 공짜의 악순환을 만든 첫 단추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 사태 와중에 던진 전 국민 지원금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일지 모른다.